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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저로 무장한 일본 패션 브랜드의 위세가 매섭다. 엔저 현상으로 일본에서 경쟁력이 약해진 국내 패션기업들이 속속 철수하거나 사업을 축소하고 있는 반면, 엔저 효과를 등에 업은 일본 패션기업들은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국내 공습을 강화하고 한국 유통시장에서 총공세를 펼치고 있다.

일본 패션기업들이 엔저를 발판으로 보폭을 부쩍 넓히면서 한국 패션기업은 현금다발을 앞세운 중국에 이어 가격경쟁력을 갖춘 일본기업에도 치이는 모양새다.

그동안 일본 기업들은 정국불안과 경제난으로 제실력을 발휘하지 못했으나 혹독한 구조조정을 마치고 엔화약세를 틈타 최근 들어 산업계 전반으로 부활하고 있다.

국내 패션 대기업 중에서 유일하게 현지법인을 통해 일본시장에 직접 진출했던 이랜드 패션사업부문은 지난 1일자로 일본 요코하마 스파오(SPAO) 매장을 폐점, 일본 진출 2년만에 현지에서 운영하던 5개 매장의 문을 모두 닫게 됐다.

엔저(円低)가 발목을 잡았다. 2013년 ‘아베노믹스’가 본격화하면서 원화 대비 엔화 가치가 급격히 하락 한국산 제품 가격이 일본산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싸졌기 때문이다.

이랜드는 2013년 일본에 진출해 현지 백화점과 쇼핑몰에 ‘미쏘’ 2개점, ‘스파오’ 3개점을 운영했지만 지난해 '스파오' 매장 2개점과 '미쏘' 1개점을 정리한 데 이어 올해 들어 2개 매장도 문을 닫았다.

이랜드가 일본에서 전개한 '스파오'와 '미쏘'는 합리적인 가격을 무기로 내세웠으나 지속적 엔저현상에 따라 현지 판매 단가 상승 부담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이랜드 관계자는"일본 매장에서 취급하던 의류와 영업 인력은 모두 중국, 대만, 홍콩 등 중화권으로 이동하며 일본 법인은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엔저 현상에 따른 사업 환경 악화에 따라 매장을 잠시 접고 대신 중화권 시장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006년 일본에 진출한 아모레퍼시픽그룹의 고가 브랜드 ‘아모레퍼시픽’도 지난해 일본 백화점 4개점을 접었다. 한때 매장이 8개에 달했던 아모레퍼시픽그룹의 일본 매출은 2013년 476억원에서 2014년  457억원으로 줄었고, 39억원의 영업 손실을 기록했다.

중저가 화장품 브랜드 '미샤'를 보유한 에이블씨엔씨의 일본 법인 ‘미샤재팬’ 역시 지난해 매출이 160억원 선으로 전년에 비해 20%가량 줄었다.

한국 브랜드들이 일본에서 철수하거나 사업을 축소하고 있는데 반해  수년동안 불황 경쟁력을 갖춘 일본계 패션 브랜드들은 내수 침체가 비슷한 한국시장 진출에 고삐를 죄고 있다. 최근 유례없는 엔저 현상까지 겹쳐 'J-패션'의 한국 공략 파괴력이 한층 배가되고 있는 것. 의류는 물론이고 각종 패션잡화와 생활용품, 디자인과 가격 경쟁력을 갖춘 일본 브랜드들은 공격적으로 한국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한국시장에 진출한 일본 패션 대기업은 패스트리테일링(유니클로 모회사)과 아다스트리아홀딩스(니코앤드 모회사), 세이유(무인양품 모회사), 월드그룹(더샵티케이믹스파이스 모회사), 온워드카시야마(조셉옴므 모회사), 와코루(신영와코루에 자본 투자) 등이 대표적.

이들의 한국 매출은 지난해 1조5000억 원에 육박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유니클로는 한국 진출 8년 만에 ‘1조 클럽’에 진입할 만큼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2002년 국내에 진출한  ABC마트코리아와 데상트코리아 등도 매년 두 자릿수 이상 매출 성장을 기록하며 한국시장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장기 내수침체에 대응해 원가절감 노하우를 확보하고 있는 일본 패션기업들은 엔저 효과와 함께 한국시장에서 공격적인 가격 할인정책을 구사하며 강한 시너지를 발휘하고 있으며 국내 패션기업들을 위협하고 있다.

유니클로는 사실상 연중 상시 할인체제를 가동 중이며, 무인양품은 지난해 4월부터 전체 판매 품목 30%의 가격을 최대 35%까지 인하했다. 무지코리아는 지난해 중순 가격경쟁력 강화를 위해 일본 생활용품 브랜드 ‘무인양품(無印良品)’ 670개 상품의 가격을 최대 35% 인하하기도 했다.

제일모직도 일본 수입 브랜드 꼼데가르송(Comme des Garcons) 가격을 올해부터 전체적으로 약 10% 인하했다. 꼼데가르송은 1969년 일본 디자이너 레이 가와쿠보(川久保玲)가 만든 회사로 이 회사가 전개하는 '플레이' 라인은  해외 셀럽들에게 인기를 끌면서 국내 시장에서도  인기가 많은 편이다. 합리적인 가격대의 '플레이' 라인은 앞으로  가격 경쟁력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 사진제공 = 니코앤드 >

일본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유명한 '니코앤드'는 지난해 강남역에 이어 제2롯데월드점 파르나스몰점을 통해 한국시장 공략을 가속화하고 있다. 일본 내 100개 매장을 비롯해 중국, 싱가포르 등에도 매장을 운영중인 '니코앤드'는 작은 소품부터 문구류, 테이블웨어 빈티지가구, 의류 등 실용주의 상품을 갖추고 있다.

유통업체들도 엔저 현상으로 가격 경쟁력이 높아진 일본 패션 상품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신세계 백화점은 지난달 일본 미츠코시이세탄(三越伊勢丹) 백화점의 자체 슈즈 브랜드 ‘넘버 21'을 도입했다.

국내 백화점에 일본 구두 브랜드가 입점한 것은 첫 사례로 기능성 슈즈 중심의 일본 슈즈 브랜드들은 원가와 환율이 높아 수입에 부담스러웠으나 엔화 약세로 인해  20만원 초반 가격대로 선보이고 있다.

< 사진제공 = 마크앤로나 >

신세계백화점은 또 아이올리(대표 최윤준)와 손잡고 일본 골프웨어 「마크앤로나(MARK & LONA)」를 도입, 지난 6일 신세계 본점과 강남점을 오픈했다. 「마크앤로나」는 지난 2008년 일본에서 탄생한 디자이너 골프 브랜드로 기존 골프웨어와는 다른 독창적인 디자인과 패셔너블한 감성으로 인기를 끌었다. 브랜드 심볼인 ‘해골문양’과 카모플라주 문양이 들어간 상품 등은 「마크앤로나」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일본내에서 두터운 마니아층을 확보하고 있다. 이외에도 신세계 백화점은 엔화 약세 시대에 맞는 다양한 일본 패션상품을 도입할 것으로 보인다.

해외 직구족들도 가격 경쟁력이 높아진 일본 쇼핑몰로 눈을 돌리고 있다. 올해 1∼2월 해외 배송대행 업체 몰테일의 일본 직구 배송대행 건수는 약 1만8000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0% 늘었다.

한편 엔저 현상에 대비한 한국 패션기업은 거의 무방비 상태로 일본 브랜드의 한국 공략을 단순히 환율효과로만 봐서는 안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가격 경쟁력과 높은 품질 등 불황 경쟁력을 쌓은 일본 브랜드들에 비해 한국 브랜드의 경우 글로벌 생존 경쟁력이 더욱 취약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에 진출한 일본 패션 브랜드 대부분은 1990년대 버블붕괴 시기에 가격을 무기로 급속한 성장세를 보였다. SPA 브랜드의 대명사인 패스트리테일링은 제조와 유통을 일원화하는 방법으로 가격을 대폭 낮춰 연매출 12조원을 돌파했다. '아시아의 인디텍스'(자라 모회사)로 불리는 아다스트리아홀딩스도 이 시기에 소매와 유통 전문 자회사를 통합해 품질과 가격 경쟁 인프라 구축에 주력했다.

환율은 기업 환경에 있어서 정확한 예측이 불가능한 변수로 엔저 공세 앞에 기업들이 직접 대응책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겠지만, 패션기업들이 가격 경쟁력을 앞서는 디자인 및 상품 개발에 더욱 힘을 쏟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류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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