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칼럼 | 2015-02-15 |
[무비패션] '프리티 우먼'의 베스트 패션 장면들
리차드 기어와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영화 <프리티 우먼>이 개봉된 지 올해로 25년이 지났다. 그러나 무비 패션의 시각에서 보면 영화는 단지 1990년대에 머물러 있지는 않은 듯하다. LA의 로데오 거리를 배경으로 럭셔리 패션과 스트리트 패션의 극과극을 보여준 영화 <프리티 우먼>에의 최고의 패션 장면을 소개한다.
먼저 못 보신 분들을 위해 영화 스토리를 간단하게 소개한다. 매력적인 독신 남 에드워드 루이스(리차드 기어 분)는 재정이 어려운 회사를 인수, 분해해서 다시 파는 M&A 전문가다. 진행 중인 모스 기업 인수 구상 차 할리우드에 사는 친구이자 변호사 필립 스터키의 파티에 참석한 그는 필립의 차를 빌려 타고 투숙하고 있는 호텔로 가던 중, 지리를 몰라 당황한다. 이때 손님을 기다리던 콜걸 비비안 워드(줄리아 로버츠)의 도움을 받는다.
스스럼없는 길거리식 순진무구한 행동을 보이는 비비안에게 신선함을 느낀 에드워드는 그녀와 같이 하룻밤을 지내게 된다. 다음날 모스 기업의 창업주가 면담을 요청하자 에드워드는 비비안를 데리고 가라는 필립의 충고대로 비비안에게 일주일 동안 고용 파트너가 돼줄 것을 부탁한다. 에드워드의 제안을 수락한 비비안은 드레스를 사기위해 LA 로데오 거리에 간다. 그러나 스트리트 스타일의 패션 때문에 럭셔리 매장 점원으로부터 천대를 받자 에드워드의 배려로 호텔 지배인 톰슨에게 도움을 청해 다시 로데오 거리로 나가 인생일대 최고의 쇼핑을 하게 된다. 아마 이 영화 제목 <프리티 우먼>에 맞는 최고의 장면이 아닐까 한다.
한편 에드워드는 자신이 후원하는 자선 플로 경기장에서 비비안의 신분을 의심하는 필립에게 얼떨결에 그녀가 매춘부임을 밝히게 되고 비열한 필립은 그 약점을 이용해 비비안을 희롱한다. 호텔로 돌아온 둘은 이 문제로 다투게 되고 화가 난 에드워드는 곧 뒤따라 가서 사과를 하고 같이 있어줄 것을 부탁한다. 그날 밤 둘은 자신들의 개인적인 이력을 밝히며 더욱 가까워진다. 에드워드는 비비안을 샌프란시스코의 오페라 장에 데리고 가는데 자신의 인생과 닮은 <라 트라비아타>를 보며 감동하는 비비안의 모습을 보고 참사랑을 느낀다. 물론 결론은 해피 엔딩이다.
당신 크게 실수한거야!
1990년 클래식 영화 <프리티 우먼>에서 최고의 패션 장면에 대한 모든 논의를 할 때면 전날 자신을 냉대했던 로데오 거리의 무명 디자이너 매장으로 다시 돌아가 비비안 워드가 "당신 큰 실수한거야(Big mistake. Huge)" 라고 건방진 점원에게 말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이 장면에서 비비안은 여러 개의 큰 쇼핑백을 들고 매장에 들어가 앞으로 다른 곳에서도 충분히 돈을 쓸 수 있음을 과시한다. 그녀를 냉대한 대한 대가를 치르는 점원의 표정이 압권이다. 매일 쇼핑을 하지 않다가 갑자기 스타일에 신경(?)을 쓰지 않고 돈을 쓰기 위해 호화로운 매장에 들어갔을 때, 점원의 행동 때문에 대부분의 여성들은 스스로 무가치하다는 것을 경험할 것이다. 그러나 명품 매장 직원들의 싸가지 없는 응대에 열 받아서 더 적극적으로 구매하는 것은 '프리티우먼 효과'라고 한다. 어쨌든 '당신 크게 실수했어!"라고 말하는 장면은 문턱 높은 명품 부티크 때문에 심리적 협박을 느낀 모든 여성들을 위한 손꼽을 만한 기분 좋은 장면이다. 참 비비안이 쇼핑하는 장면에서 일본풍 양산을 들고 지나가는 아주머니가 언뜻 보이는데 이는 1990년 일본 관광객들의 명품 싹쓸이가 절정에 달했던 시점을 암시한다. 물론 경제 호황이 부동산 버블로 터지면서 잃어버린 10년으로 돌아가지만 말이다.
선견지명이 있었던 파리 보그 룩
파리 <보그> 편집장 엠마누엘 알트가 패션쇼장 프론트 로에서 네이비 블레이저를 입고 앉기 있기 훨씬 전에 영화 속 비비안은 같은 룩을 이미 선보였다. 마지막 장면에서 고소 공포증이 있는 에드워드가 건물에 붙어있는 비상계단을 타고 올라가서 창가에 있는 비비안에게 프로포즈를 하는 장면에서 줄리아 로버츠와 리차드 기어가 서로 포옹할 때 새롭게 리폼된 워킹 걸은 하이 웨이스트의 일자 청바지와 안으로 집어넣은 화이트 티셔츠에 블랙 블레이저를 입고 있다. 그것은 요즘 스트리트 스타일의 블로그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시대를 초월한 룩의 스트리트적 버전이다.
파워 숄더의 H라인 원피스
전날 로데오 명품 매장에서 푸대접을 받았던 비바안은 에드워드 준 무한한도 신용 카드(?) 덕분에 로데오 거리에서 생애 최고의 쇼핑을 한다. <프리티 우먼> 주제 음악이 울리는 가운데 쇼핑 삼매경에 빠진 줄리아 로버츠의 모습은 1990년대 한국 여성에게는 믿기 어려운 영화 속에나 나올만한 장면이었다. 물론 25년이 지난 지금 보면 그때를 아십니까 수준이지만. 어쨌든 속옷 쇼핑에 도트 원피스와 스타킹까지 마치 퍼스날 트렁크 쇼를 방불케 하는 쇼핑을 마치고 완벽한 명품 녀가 된 비비안은 전날 자신을 박대했던 매장에 들러 “나 엄청나게 쇼핑했거든!”이라며 멋진 복수를 하고 호텔로 돌아온다. 쇼핑한 게 너무 많아 벨보이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호텔로 들어 설 때 스타일은 당시 잡지에 많이 실린 화보다. 와이드 챙 모자에 파워숄더 무릎 길이이 H라인 원피스에 실크 장갑까지. 지금은 흔히 볼 수 없는 다소 촌스러운 느낌이지만 어쨌든 80년대로부터 이어진 파워 숄더의 파워는 90년대 초반까지 엄청났더랬다. 참 영화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 앤 해서웨이가 이 스타일과 비슷한 옷차림을 하고 나온다. 유행은 돌고 돈다는 말이 맞는 듯 하다. 길이나 소재만 요즘에 맞게 조정한다면 한번 도전해 볼만 할 스타일이 아닐까 한다.
1980년대 풍 복잡한 레이어드 룩
비비안이 일하러 나갈 준비가 된 오프닝 장면은 옷장 시각에서 볼 때 잊을 수 없는 장면이다. 버블 패드의 라이크라 미니드레스는 1980년대의 저렴한 스트리트 브랜드 '미스 셀프리지'에서 누구나 샀을 정도로 친숙한 하류 스트리트 스타일이다. 비틀즈 모자, 멀티 빈티지 팔찌, 블랙 라펠과 롤업 소매의 레드 블레이저 등이 대표적이다. 물론 PVC 허벅지 부츠도 마찬가지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비비안이 블랙 마커 펜으로 힐의 뒤꿈치에 색칠을 할 때 지퍼 잠그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 지금까지 어떤 영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옷장 소음에 관한 최고의 음향 효과다. 효과음 아티스트는 단독으로 아카데미상을 받을 가치가 충분히 있는 셈이다. 어쨌든 1990년 개봉작이다 보니 영화 초반의 비바안 1980년대 스타일로 등장한다.
외박한 다음날 아침 패션은 화이트 셔츠?
비비안의 룩에 처음 변화가 올 때 - 그녀는 금발 가발을 잃어버리지만 아직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완전한 '태틀러 잡지의 다이애너 황태자비' 룩으로 아직 변신한지 않았다 - 에드워드의 화이트 셔츠를 능수능란하게 사용한다. 그녀는 화이트 셔츠 소매를 걷어 올려 워킹 걸 드레스처럼 허리춤에서 묶는 스타일을 연출한다. 한때는 촌스러운 패션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줄리아 로버츠의 스타일은 지금 봐도 여전히 시크한 멋이 느껴진다. 이것은 룩을 위한 사토리얼 팔레트 클렌저(sartorial palate cleanser}라고 부른다. 또한 이것은 과음한 다음날의 여성의 남자 옷장 대여를 의미하기도 한다. 미드 <섹스 엔 더 시티>에서도 캐리 브래드쇼는 벨트를 한 빅의 화이트 셔츠와 함께 힐을 신었다.
평범하지만 멋진 친구의 옷장
크롭트 레오파드 탑, 후프 귀걸이, 미니스커트. 친구의 옷장은 1980년대에 보내는 러브 레터에 가깝다. 비록 영화는 1990년에 개봉이 되었지만 영화 속 의상은 1980년대 10년간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셈이다. 그러나 친구인 콜걸 키트 드 루카가 입은 옷 중에서 베스트 아이템은 스톤 위시된 블루종 소매의 크롭트 데님 재킷이 아닐까 한다. 이 재킷은 자의식이 상한 터프 걸의 보호 본능이 느껴지는 레이어룩으로 온순한 영혼을 표시한 것으로 보인다. 콜걸이 남자를 유혹할 때도 크롭트 데님 재킷을 입는데, 아마도 스트리트와 페미닌이라는 콜걸의 이중적 심리를 나타낸 듯한다.
당당함이 엿보이는 도트 원피스
에드워드와 비비안이 동시에 등장하는 장면 중에서 스타일 적으로 최고의 커플룩은 바로 멋진 수트 차림의 에드워드와 도트 원피스를 입은 비비안이 아닐까 한다. 지금도 환상적인 커플룩을 예로 들 때 자주 거론되는 무비 패션이다. 멋진 쿨 그레이 수트 차림의 에디워드와 비바인이 브라운 톤의 도트 원피스를 입은 장면이다. 특히 영화 속에서 비비안이 선물해 준 약간 코믹한 코브라 패턴이 들어간 넥타이는 브라운 컬러 도트와 묘한 조화를 이룬다. 흔히 땡땡이라 불리는 도트는 지금도 패션에서 여성스러움을 강조한 로맨틱 클래식의 대명사로 불린다.
레드 카펫 볼 가운을 연상시키는 레드 드레스
에드워드는 사소한 오해 때문에 생긴 미안함을 대신해 비비안을 데리고 오페라 그장으로 간다. 이때 입은 스트랩리스 레드 드레스와 특별히 주문한 목걸이가 눈길을 끈다. 전용기를 타고 가서 본 오페라의 제목은 <라 트라비아타>. 고급 창녀가 부자와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으로 영화와 스토리가 닮았다. 라 트라비아타는 길을 잘못 든 여자라는 뜻인데 이태리어를 모른다고 뻘쭘해 하던 비비안은 오페라에 감동에 눈물을 흘린다. 턱시도 차림의 에드워드와 함께 최고의 레드카펫 커풀 룩이 아닐까 한다. 참고로 이 영화로 줄리아 로버츠는 그래미 어워즈에서 여우주연상을 탔다. 또한 1999년 <노팅힐> 시사회에서 스트랩리스 레드 드레스를 입었지만 겨드랑이 체모를 처리하지 못해 굴욕을 당하지만 <에린 브로코비치>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2011년 아카데미 시상식 레드 카펫에서는 발렌티노의 화이트와 블랙 컬러가 대비되는 드레스로 베스트 드레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글 유재부 패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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