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앤토크 | 레전드 스토리/ 디자이너 LEE SHINWOO 2015-02-02

K패션의 포스트모더니즘 이끈 패션 코리아의 작은 거인

외형상으로는 신장 150cm+∝지만 한국 패션계에서 '무에서 유를 창조'한 개척 정신을 볼 때 분명 작은 거인임에 틀림없다. 한국 패션의 대모로서 남보다 한발 앞서간 그녀의 여정은 바로 한국 패션의 역사이기 때문. 올해로 디자이너로 산지 47주년째인 패션 코리아의 자존심이자 패션 레전드인 디자이너 이신우를 만나보자.




패션 디자이너 이신우는 194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유년시절을 살펴보기 전에 그녀의 부친을 먼저 살펴봐야 한다. 왜냐하면 그녀의 부친이 없었다면 지금의 이신우는 없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녀의 부친 이종무 씨는 어려서부터 예술적 소질이 풍부한 사람으로 193321세 약관의 나이에 디자인 공부를 위해 몰래 일본으로 건너가 유학을 했고, 그곳 디자인 회사에 들어가 디자인실장에 까지 오른다.

 

더욱이 전일본 연미복 디자인 코스에서 1등을 해 부상으로 주어진 해외 여행을 하다가 잠시 한국에 들렸다가 보수적인 집안의 반대로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주저앉고 말았다고 한다. 부모님의 성화로 서둘러 한국은행에 다니던 모친 전종화 씨와 결혼, 당시 우리나라에 아직 디자인이라는 개념이 없던 때라 봉제 사업에 시작해 대 숭인동에서 군복과 제대복을 만들었다. 덕분에 그녀는 어려서부터 옷 만드는 것을 구경하며 자랄 수 있었다.

 

이러한 생활환경에서 그녀는 그림을 그리고 옷감을 자르고, 또 자른 옷감을 꿰매면서 놀았다. 그러나 매일 방바닥에 엎드려 그림만 그려대는 큰 딸을 보는 부모의 입장은 정반대였다. 당시 여성으로는 드물게 신식교육을 받고 한국은행에서 근무했던 그녀의 모친은 컴퓨터처럼 치밀하고 분석적이어서 도통 이런 어린 딸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의 아버지는 반대로 대견한 눈길로 딸아이의 재능을 지켜봐 주었고, 자신이 못다 이룬 꿈을 딸이 이루어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평생 정신적인 후원자가 되어 주었다. 후일 '마이니치 패션대상'을 받은 다음 귀국후 부친의 산소에 상장과 상패를 놓고 그냥 한없이 앉아 있었다고, 특히 돌아가시기 전 그녀의 수상 소식을 직접 전해 듣고 세계적인 디자이너로 인정받은 딸을 무척 자랑스러워했다.


   

다락방은 그녀에게 특별한 존재였다. 다락천장에 알전구 하나밖에 없는 작은 공간 이었지만 들어가 누우면 마치 서까래가 중생대 짐승의 갈비뼈처럼 드러나 있어 박제된 공룡의 텅 빈 가슴속에 누워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곤 했다. 이 박재된 공룡의 가슴속은 꼬마 숙녀 이신우에게 아늑한 쉼터이자 놀이터였다. 여기서 얻은 영감은 오리지날리 명동 숍 오픈에서 그대로 재연되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미래의 세계적 디자이너 이신우는 졸고 꿈꾸고 공상하며 시간을 보냈다.

 

특히 옷을 짓고 남은 헝겊조각을 모아 조각 보자기로 싸 놓은 복짇고리(옷을 짓고 남은 헝겊을 모아 싸놓은 것)와 빛바랜 사진첩은 그녀의 다락방행의 유일한 표적이었다. 이 다락방에서 알록달록한 헝겊을 이리 오리고 저리 오려서 나름대로 디자인을 하고 꿰매어 인형 옷을 만들었다. 또한 사진첩 속 자신의 얼굴이 나온 사진을 골라 굵은 만년필로 셀프 성형수술 했다. 작은 눈에는 오드리 햅번의 포도알 같은 눈망울을 그려주고, 넓죽한 얼굴은 달걀형의 갸름한 윤곽으로 과감히 수정했다.

 

낡은 사진첩에 그녀가 생각하는 완벽한 그녀는 없었기에 사진첩에 나온 얼굴은 모두 성형수술을 받아야 했다. 이는 미에 대한 그녀의 유별난 집착이자 확고한 신념이었고 디자이너가 될 수밖에 없었던 그녀 인생의 서막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여튼 그녀는 무허가성형수술의 대가로 어머니로부터 난생처음 종아리를 맞는다.

 



1948년 그녀는 서울 사대부국에 시험을 쳐서 들어간다. 그녀의 그림솜씨는 국민 학교(지금의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발휘된다. 집에서 듣지 못한 칭찬을 들으니 더욱더 그림에 취미가 생긴 것이다. 이상한 행동을 많이 하긴 했지만 내성적이고 별로 말이 없었던 그녀는 특별한 친구도 없었다. 그래서 늘 혼자 다니는 것을 즐겼다. 학교가 성동 역에 있어 등교 때는 자동차로 태워줬지만 하교 때는 숭인동 집까지 걸어가야만 했다.

 

국민 학교를 다니던 어느 봄날,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큰 다리가 있었다. 그녀는 그날도 여느 날처럼 다리 위에서 연못을 한참동안이나 넋을 잃고 구경하다 공상에 잠기는데 갑자기 희고 붉은 연꽃에서 네모난 하얀 종이가 둥실 떠오르는 것이 보였다. 가슴을 두근거리며 연꽃에서 봉긋 떠오른 하얀 종이를 놓치지 않으려고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니 그 하얀 종이는 둥실 떠올라 마치 삭아들 듯 조금씩 야위어지면서 연기처럼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녀는 이를 영혼의 한 조각이라고 생각했고 아직도 그 기억은 오래됐음에도 불구하고 생생하다고, 집에 돌아와 식구들에게 신비스러운 장면을 흥분해서 얘기했지만 아무도 그녀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이후 이런 일들은 그녀만의 비밀세계가 된다.

 

국민 학교 생활이 익숙해질 즈음인 10살 때 한국전쟁이 일어나 부모들은 아이들과 삼촌들을 금곡으로 피난시키고 부모들만 사업 때문에 서울에 남았다. 서울 수복 후 금곡 생활을 끝나고 숭인동 집으로 들어가지만 다시금 1.4 후퇴로 수원에서의 생활이 시작된다. 이곳에서 그녀는 자연을 친구 삼아 풍부한 감성을 기른다. 그리고 다시 그녀는 군인이었던 부친을 따라 부산으로 피난 간다. 이곳에서 그녀는 부산 보수산으로 옮긴 서울사대부국에서 다시 학교를 다닌다. 전쟁이 끝난 후 서울사대 부고는 청계천 6가 계림극장 옆으로 이전을 했고 학교 옆에는 외국물건들을 잔뜩 갖다 놓고 파는 방산시장이 유명했다.


 

6학년이 되어서는 중학교 입학시험 때문에 과외까지 시켜 주지만 공부에는 생각이 없고 멋 부리거나 연애하는 생각이나 하는 그녀에게는 단지 우이독경에 불과했다. 경기여중에 들어가서도 여전히 공부에는 취미가 없었다. 그래서 찾은 소일거리가 미술. 그녀는 자기가 좋아하는 여배우들의 브로마이드를 그리기 시작했다.

 

경기여고 시절은 그녀에게 있어 암울했던 시기, 중학교 때는 공부는 못해도 그림을 잘 그려 친구들에게 인기도 있었지만 입시위주의 교육이 횡행하고 우등생만이 대접받는 풍토가 영 맘에 안들었다. 비록 공부도 못하고 학교 규율도 안 지켰지만 미술이나 음악방면에 있어 소질은 천재적이었다.

 

1960년 그녀는 이화여대 서양학과에 입학한다. 그녀에게 있어 공식적인 멋 부리기의 시작이었다. 62년 그녀는 미팅을 통해 운명적으로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서울대 공대에 다니며 자칭 미팅의 원조라고 자처하는 응원 단장 박주천 학생이 그였다. 그를 처음 본 순간 그녀는 여고시절의 우상인 까뮈를 너무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의 창백한 얼굴과 빛나는 예리한 눈에 사랑의 포로가 되어 만난지 1년도 안된 621125일 결혼식을 올렸고 재학 중 결혼불가라는 학칙 상 그녀는 3학년 중퇴를 한다.



 

당시 남편은 가난한 고학생이었기에 그녀의 신혼은 좁은 골목길을 한참이나 들어가야 겨우 찾을 수 있는 작은 집에서 시작됐다. 졸업한 남편은 수도 피아노사에서 1년간 근무를 하다가 전공을 살려 구봉광산으로 내려간다. 그녀는 남편을 따라 강원도 탄광촌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약속된 시간까지 남편이 나타나지 않았다. 한참 후에야 남편 혼자서 배웅하러 나왔다. 이유를 들었더니 기타와 패션지를 든 젊은 여대생 같은 모습을 한 이신우를 직원들에게 소개해 줄 수 없어서였단다.

 

어쨌든 그녀는 여느 광산촌 여인네와 같은 일상의 반복이었지만 별다른 고통은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구봉탄광이 무너져 봉괴 사고가 나 양창선이라는 광부가 기적으로 48일 만에 살아나 뉴스를 탔지만 당시 소장을 맡았던 남편 박주천은 책임을 사표를 냈다. 광산에서 다시 서울로 올라온 그녀는 둘째 동생 영우가 하는 '비쥬살롱'에서 월급을 받고 일을 하게 된다.

 

1968년 가을 '오리지날리'라는 이름으로 용두동 살림집 한쪽에 조그마한 공간을 마련해 살롱으로 개조한다. 당시엔 무슨 무슨 양장점 하는 식으로 의상실이 불리던 시절이라 '오리지날리'라는 이름은 파격적이었다. 이는그녀가 지금까지 줄곧 한국 패션계를 향해 던지는 '독창성' 바로 오리지날리티에 대한 패션 철학 때문이었다.

 


늘어나는 고객들 때문에 매장도 늘려야 했기에 조그만 오퍼상을 하던 남편의 재정적인 도움을 받아 패션1번지 명동으로 진출한다. 용두동에서 일을 저지른 지 2년 만의 일이다. 아직 큰길로 나갈 여건이 안 되어 먼저 유네스코 회관 뒷골목에 있는 작은 커피숍의 2층을 빌려 매장을 만들었다. 다시 2년 후 명동 중심가인 제일 백화점 건너편 단층 건물로 이사를 간다.

 

그녀는 점점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디자인과 비즈니스 분리를 생각하게 된다. 그녀는 솔직히 경영에는 까막눈이었다. 그래서 자신은 디자인만 하고 남편이 비즈니스를 하는 파트너 쉽 형태를 남편에게 제안하지만 쉽사리 승낙하지 않았다. 결국 계속적인 설득으로 남편의 승낙을 받아 선진국에서 이미 운영하고 있는 디자인과 경영의 분리 형태를 국내 최초로 도입한다.

 

1977년 봄 그녀는 이제는 우리도 옷감만을 팔 것이 아니라 디자인을 팔아 제 값을 받을 시기가 왔다는 신문 인터뷰와 함께 한국 최초로 파리 프레타포르테에 참가한다. 커다란 박람회장 한쪽에 코리아라는 팻말이 붙은 부스에 전시되었다. 그해 가을 두 번째로 나가면서 새삼 자신의 시야가 넓어짐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그녀의 자신감에 점차 다른 디자이너도 참가하게 되었고 그녀는 뜻밖의 행운을 잡는다.


 

실크 팜이라는 미국회사의 재미교포 대표가 찾아와 계약 디자이너를 제안한 것이다. 그녀가 미국 시장에 디자인을 선보일 절호의 찬스였다. 어떻게 해서든 해외로 나가고 싶었던 그녀는 디자인을 해서 샘플을 미국으로 보내면 현지에서 이것을 메인으로 생산하는 계약에 흔쾌히 응했다. 2년 후 그녀의 디자인은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드디어 이신우라는 이름을 옷 라벨에 넣을 수 있게 되었다.

 

미국에서 히트를 친 아이템은 그녀가 처음으로 개발한 '보더 프린트'.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스트라이프 시폰에 프린트를 하는 기법으로 특히 보랏빛 시폰 원피스는 미국 전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게 된다. 오리지날리가 'designed by ICINOO'라는 한국의 디자이너 브랜드로 처음 세계 시장에 선보인 것이다. 미국 진출 후 얼마 안된 9011, 그녀는 아시아 디자이너로는 처음으로 세계 5대 컬렉션 중 하나인 도쿄 컬렉션에 초대된다.

 

90년 이후 그녀는 4회에 걸쳐 도쿄 컬렉션에 참가해 우리 문화와 예술, 역사 까지도 패션을 통해 가깝고 먼 이웃 일본에 전해 주었다. 이런 점에서 그녀가 91년 수상한 일본의 권위 있는 패션상 '마이니치 패션대상'은 의미가 크다. 일본 패션계의 거장 이세이 미야케, 레이 가와쿠보, 요지 야마모토 등의 세계적인 일본 디자이너들이 수상했던 이 상은 비록 신인상이었지만 두 번의 컬렉션을 보고 감동한 일본 패션 인들의 마음이었다. 그녀는 상패를 들고 귀국해 아버지 무덤에 올리고 한참을 울었다고 했다. 자신에서 패션 DNA를 물려준 고마움과 원망(?) 때문이었을 것이다.

 

19933월에는 드디어 국내 최초로 파리 컬렉션에 나가게 된다. K 패션의 세계화의 물꼬를 튼 셈이다. 이때 이영희의 바람의 옷, 진태옥의 조선 백자를 닮은 단아한 옷과 함께 고구려의 기상의 느껴지는 힘이 느껴지는 이신우의 옷은 유럽인들에게 한국의 유구한 헤리티지를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IMF와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결국 브랜드 사업을 접었지만 중간 중간 컬렉션을 발표하며 노장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는 교훈을 몸으로 보여주며 최근에는 SFAA에 다시 가입해 한국 패션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

 



 에필로그

 

필자가 디자이너 이신우 선생을 처음 만난 것은 95년경이다. 대학 졸업 후 모기업 홍보실에서 패션지 <패션투데이>로 자리를 옮긴 필자는 대학에서 의상학도로서 흠모했던 디자이너 이신우와 꿈같은(?) 3시간에 걸친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다. 위의 글은 당시 쓴 인터뷰 글이다. 이 글을 다시 올리는 이유는 패션 코리아의 레전드들이 너무 쉽게 잊혀져가는 아쉬움 때문이다. 해외 패션계에서는 사라진 브랜드를 다시 복원시키는 마당에 살아있는 전설조차 지키지 못하는 K패션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자괴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 첫 레전드 스토리 주인공으로 이신우 선생을 선택했다.

 

당시 서울 합정동 강변도로변에 있는 건물의 3층 맨 끝에 그의 작업실. 샘플 옷들이 걸려 있고 옷감들이 여기저기 널려있었다. 아침 8시 반이면 어김없이 출근해 밤 9시까지 일한다는 그녀는 무척 바쁜 모습이었다. 자그마한 키에 갸름한 얼굴, 남 앞에 나서기 싫어하는 내성적인 성격에 말투는 어눌하면서도 솔직하다. 그녀를 만난 나의 첫 인상이었다.

 

그리고 이신우 브랜드가 부도가 난 후 얼마 후 이신우의 평창동 자택에서 그녀를 다시 만났다. 원래 이 날은 연말에 개봉될 영화 <단전비연수>의 영화 의상을 준비하는 둘째 딸 디자이너 박윤정을 인터뷰하러 갔다가 '점심 식사나 하고 가라'는 그녀의 성화에 못 이겨 셋이서 함께 식사를 했다. 전날 숙취로 어지러웠던 필자는 얼큰한 김칫국으로 속을 풀었고 그 맛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필자가 만나본 이신우는 자연의 느낌이자 정적인 느낌이다. 150센티미터도 안 되는 이 작은 거인은 부단히 꼼지락거리면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만들어낸다. 그야말로 한번 일에 빠지면 헤어나질 못하는 워크홀릭 기질도 엿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리어적인 느낌보다는 간난이(?)에 가까운 소박함이 있다. 점심시간에도 외식보다는 도시락을 싸가지고 와서 자신의 작업실에서 혼자 까먹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맨밥에 멸치를 고추장에 찍어 먹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를 결성하는 데 있어 선배로서 꿋꿋하게 지지해준 한국 하이패션의 살아있는 전설 이신우는 지금도 한국 패션의 미래를 위해 후배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늘 직책보다는 격려가 몸에 배어있는 그녀는 최근 손녀까지 디자이너가 되어 이신우-박윤정-윤니나로 이어지는 3대째 디자이너 가문의 영광을 이어가도 있다. 아버지까지 치면 4대째 대한민국에서 패션 디자인을 하고 있는 셈이다.

 

올해로 디자이너 인생 47주년이 되는 이신우 선생은 패션의 변방 대한민국에서 "무에서 유를 창조"한 개척 정신을 볼 때 분명 패션 코리아의 작은 거인이라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한국 패션의 대모로 항상 앞에서 달려간 그녀의 여정은 바로 한국 패션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폴 포아레와 스키아파렐리처럼 이신우 선생 생전에 브랜드 ICINOO가 부활해 한국 하이패션의 헤리티지를 서울 컬렉션에서 볼 수 있기를 고대해 본다.

 

패션엔 유재부 기자

kjerry38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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