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칼럼 2015-02-02

[패션칼럼] 올 가을 불어 올 파괴적 욕망의 '그런지 바람'

90년대 그런지 문화의 선두주자로 각광 받았던 그룹 너바나의 리드 싱어 이자 기타리스트였던 커트 코베인이 죽은지 20년이 지난 지금 복고 바람을 타고 '파괴 욕구'로 무장한 그런지 룩이 부활하고 있다.




90년대 향수가 짙게 드리운 대한민국. 영화 <건축학 개론>에서 촉발된 90년대 열풍은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응답하라 1994>의 히트로 이어지더니 최근 <무한도전-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로 그 절정을 달리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2015 가을/겨울 컬렉션에서도 90년대 그런지 바람이 솔솔 불어오고 있다. 아직 남성복 브랜드 일부에서 나타난 트렌드지만 212일부터 뉴욕을 시작으로 런던, 밀라노, 파리, 서울로 이어지는 인터내셔널 여성복 패션 위크가 열리기 때문에 그런지 룩에 대한 기대감을 커지고 있다

 

그런지 룩의 대부는 바로 카트 코베인이다. 아버지 커크 코베인과 어머니 코트니 러브 사이에서 태어난 딸 프랜시스 빈 코베인이 최근 아버지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를 감독해 주목을 받았다. 그런지의 전설에 대해 처음으로 제대로 조명한 영화로 평가를 받은 이 다큐는 2015 선댄스 영화제에서 프리미어로 선정되기도 했다.


 

1990년대 커트 코베인은 음악부터 패션에 이르기까지 일명 그런지 혁명을 주도했다. 아직도 많은 디자이너들은 런웨이에 커트 코베인 풍의 그런지를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커트 코베인이 입은 그런지 룩은 멋있는데 막상 일반인이 그런지 룩에 도전하면 왠지 거지가 되는 안타까움이 있지만 말이다. 그래서 늘 럭셔리를 지향하는 하이엔드 디자이너들에게 그런지 룩은 도전이자 숙제였다.

 

펑크와 히피를 합께 씹어서 입안에서 돌돌 말아 뱉으면 창조적인 그런지 룩이 튀어 나울 정도로 밀접한 관련이 있다. 비록 작은 움직임이었지만 1990년대의 우울한 사회 분위기와 잘 어울렸고 소비자들은 1980년대의 로고와 사회적 지위에 대한 집착으로 부터 벗어나 진짜(?)를 사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런지는 시에틀에서 시작되었다. 원래 그런지는 비주류였지만 너바나, 펄 잼과 같은 그룹들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이들의 패션 스타일도 덩달아 떴다. 그런지라는 딘어의 어원은 1960년대에 '더럽다'는 의미로 시작되었다. 그런지 록과 마찬가지로 그런지 패션은 기본적으로 세련된 유행을 무시한 다소 지저분한 부랑아 같은 모습으로 사이즈가 너무 크거나 혹은 너무 작은 옷을 여러 겹 겹쳐 입었다.

 

그룹 너바나의 리드 싱어 커트 코베인은 길고 헝클어진 헤어스타일에 너덜너덜하고 물 빠진 청바지, 헐렁하고 늘어난 체크 셔츠 또는 흘러내리는 큰 스웨터를 즐겨 입고 다녔다. 한마디로 그런지 패션은 지저분한 스타일로 빈티지 패션으로 불리기도 했다. 199445일 자살한지 20년이 지난 지금 그는 록의 가수 뿐 아니라 패션아이콘으로도 추앙받고 있다. 그런지 룩을 추종하는 여성들 역시 1970년대의 히피에서 영감을 받은 구겨진 짧은 꽃무늬 드레스에 오버 사이즈의 점퍼를 입고 워커를 신었다.



 

그런지 룩은 스트리트에서 시작되었지만 안나 수이가 1993년 봄/여름 컬렉션에서 이를 선보이면서 다른 하이엔드 디자이너들에게도 확산되었다. 1992년에는 마크 제이콥스가 페리 엘리스에서 해골 무늬 모자와 워커, 플란넬 셔츠와 실크 드레스를 따뜻한 캐시미어와 함께 발표했다. <뉴욕타임즈>는 이 컬렉션을 '난장판'이라고 평가했다. 결국 마크 제이콥스는 혹평에 밀려 페리 엘리스를 떠난다.

 

또한 크리스찬 라크르와, DKNY의 도나 카란, 랄프 로렌 그리고 샤넬의 칼 라거펠트 역시 그런지에서 영감을 받은 디자인을 발표했지만 정작 소비자들은 아무리 잘 나가는 톱 디자이너들이 만든 스트리트 패션이라 하더라도 비싼 돈을 지불하면서까지 구매하기를 주저했다. 여전히 럭셔리 패션은 소비자들을 유혹했고, 결국 1980년대 럭셔리 맛을 잊지 못한 고객들 때문에 그런지는 다시 거리로 쫓겨나는 수모를 당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벼룩시장이나 보세가게에서 고른 것 같은 낡은 옷들을 형식에 구애되지 않고 자유롭게 코디해서 입으면 그것이 바로 그런지 패션 혹은 빈티지 패션이다. 그럼 그런지와 빈티지의 차이는? 이름 따라 '부티''빈티'의 차이일까? 하지만 단어 해석과 달리 사전적 의미로 빈티지는 최고급 포도주인 빈티지 와인을 뜻하는 단어에서 나왔고, 1980년대 정통 하이패션과 엘리트주의에 대한 반발로 시작된 그런지룩은 형편없는, 지저분한이라는 사전적 의미 그대로의 옷차림이다.

한편 파리에서 열린 2015 가을/겨울 남성복 컬렉션에서는 공교롭게도 코베인처럼 낡을 대로 낡은 니트와 수트를 입은 모델들이 런웨이를 질주했다.


 

젊음과 음악의 뒤죽박죽 에너지를 반영하는 컬렉션으로 유명한 라프 시몬스는 악화의 다양한 상태의 아이템 시리즈룩을 발표했다. 그가 이번에 발표한 가장 자리 천이 해진 바닥에 끌리는 베스트, 누더기가 된 헴 라인의 코트, 라이닝이 소매 밖으로 튀어 나온 트렌치, 누더기처럼 구멍을 낸 스웨터 베스트 등이 좋은 예다.

 

다미르 도마가 선보인 뜨개질한 것을 풀어 골이 지게 짠 스웨터는 컬렉션에 선보인 테일러드 수트와 플리츠 하이 웨이스트 트라우저와 좋은 대조를 이루었다.

   

그리고 요지 야마모토는 스웨터의 프랑켄스타인을 보여주었다. 두개의 서로 다른 니트를 찢어 아무렇게나 전면 아래로 봉합해 부랑아가 입을 것 같은 이미지와 스트리트적인 느낌을 강하게 풍겼다. 설마 올 가을 요지의 그런지 스타일이 서울역에 나타나지는 않겠죠?

 

Raf Simons 2015 Fall/ Witer Collection




 


Damir Doma 2015 Fall/ Witer Collection  








Yohji Yamamoto 2015 Fall/ Witer Collection




 

    

글 유재부 패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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