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칼럼 2015-01-26

[패션칼럼] 릭 오웬스의 남근 노출 패션쇼와 열정 페이 논란

디자이너 릭 오웬스가 2015 가을/겨울 파리 남성복 컬렉션 런웨이에서 남성의 성기 부분에 동그란 구멍을 낸 ‘남근 노출복’을 등장시켜 관객들 뿐 아니라 누리꾼 사이에서 화제를 모았다. 이에 대해 페션쇼 다음 날 당사자 릭 오웬스가 해명을 했다. 릭 오웬스 패션쇼 파문과 열정 페이 논란에 대한 단상.




최근 논란이 된 미국 디자이너 릭 오웬스의 남근 노출 패션쇼는 단지 바보같은 충격 전술이었을까? 물론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그럴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럭셔리 재벌이 소유하지 않은 개인 패션 디자이너 브랜드의 자유의 몸짓이라는 릭 오웬스의 주장 역시 무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지난 125(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지와 <인디펜던트> 등 주요 외신들은 미국 패션 디자이너 릭 오웬스가 지난 22일(현지 시간) 열린 2015 가을/겨울 파리 남성복 컬렉션에서 선보인 캣워크에서 모델들의 남근이 노출된 파격적 패션쇼를 선보여 주목을 받았다. 릭 오웬스의 캣워크에는 원피스 스타일의 의상에 성기 부분에 주먹 크기의 구멍이 뚫려있는 의상이 포함됐다. 패션쇼 중반  이 의상을 입은 모델들이 워킹을 하는 도중 언뜻 언뜻 남근이 노출되자 관객석이 술렁였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패션쇼에서 여성들이 가슴을 노출한 의상을 선보인 것은 흔히 있는 일이지만, 남성의 성기 노출은 이번이 처음이다. 영국 <가디언>지는 여성 패션쇼에서 가슴이나 하의가 없는 모습에도 눈썹 하나 까딱 안 했을 런어웨이 첫줄 패션 에디터들도 깜짝 놀랐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논란의 의상을 입었던 모델들은 별로 대단한 일이 아니다 라며 느긋한 태도를 보였다고 전한다. 당시 관객들도 이것을 단순히 바보같은 충격 전술 정도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날 릭 오웬스의 해명에 의하면 그 안에는 무엇인가 의미있는 메시지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번 쇼는 아주 파워풀했다"고 말한 52세의 디자이너는 인터뷰에서 "다수의 사람이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지금의 패션세계다. 아울러 패션쇼를 통해 독립적인 존재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지금 거대 패션자본 기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디자이너들이 몇명이나 있을까? 이제 패션은 거대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울수 없는 세상이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자신의 이름을 건 브랜드 릭 오웬스가 메이저 패션 하우스의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는 케링그룹이나 LVMH그룹과 같은 럭셔리 그룹의 소유가 아니라는 점도 언급했다. 그는 지금까지 현대 여성들이 럭셔리 제품을 통한 물질만능주의에 빠진 명품병을 우회적으로 비판해 왔다.

 

릭 오웬스가 이번에 선보인 '프리 윌리'의 순간도 우리가 캣 워크에 등장한 여성 누드에 깜짝 놀라지 않는다는 사실에 도전하는 전술이었겠지만, 이 남자 디자이너의 경우는 어쨌든 전 세계적으로 소란과 파문을 일으켰다. "아직 때가 아닌가요?" 라고 의문을 표시한 릭 오웬스는 이어 "노출은 가장 심플하고 원초적인 몸짓이라고 생각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나는 심플하고 귀여운, 의미있는 작은 몸짓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릭 오웬스는 패션 업계의 규범에 도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4 /여름 여성복 패션쇼에서는 그는 전문 패션모델 대신 탭댄스를 추는 스태퍼들을 무대에 등장시켜 주목을 받았다. "그 패션쇼 안에는 유머가 있었다. 또한 소녀들이 "우리는 당신들을 위해 귀엽게 보이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귀여움을 잊어라. 이것은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이다"라고 말하기 때문에 매우 시크했다."고 지난해 <텔레그라라프>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상식과 쇼킹의 차이는 종이 한 장 차이다. 릭 오웬스의 남근 노출은 트랜드적 의미보다 기존의 질서를 깨고 독립적인 존재가 되고 싶다는 디자이너의 내적 갈등의 표출인지도 모른다. 패션은 늘 진보적인 길을 걸어왔다. 2~30년대에 팬츠를 입은 여성들은 레스토랑으로 부터 입장 거부를 당했고, 60년대 미니스커트는 프리섹스와 성문란의 원흉이라는 이유로 산부인과 의사들이 나서서 반대했다. 하지만 지금은 세월이 흘러 그때를 아십니까수준의 전설이 되었다.

 

패션쇼는 단지 유행을 보여주는 기능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디자이너의 에스프리와 아이덴티티를 보여준다. 그래서 가끔 상식을 거스르는 독특함으로 자신의 개성을 표출한다. 하지만 20세기 후반부터 케링이나 LVMH와 같은 럭셔리 재벌 그룹들이 브랜드 사냥에 나서면서 어느새 브랜드들은 창의력을 잊어버린 럭셔리 재벌 군단으로 변질되어 커머셜 미학만 추구하고 있다. 어쩌면 이번 패션쇼 논란은 이러한 획일화에 대한 릭 오웬스의 경고인지도 모를 일이다.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남근을 노출하는 패션은 아직도 아프리카 일부 부족들에서는 현실이다. 단지 우리가 그 장면이 불편한 것은 남근 노출이 현대 문명의 금기라는 교육과 선입견 때문이다. 그러나 패션쇼는 도덕 교과서도, 품평회도 아닌 디자이너들의 창작 발전소다. 그들의 창의력과 기발함을 더 보고 싶다면 보다 열린 마음으로 패션쇼를 보는 오픈 마인드가 필요할 듯하다.


 

요즘 우리 패션 디자이너들도 힘들다. 백화점의 수입 럭셔리 브랜드와 스트리트의 수입 SPA 브랜드의 양극화 전쟁 속에서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들을 갈 곳을 잃고 헤매는 중이다. 그나마 입점을 해 편집 매장과 백화점에 수수료를 최고 45% 정도 내고 나면 남는 것은 겨우 55%. 55%를 가지고 원단도 사고. 부자재도 사고, 샘플과 제품도 만들고, 룩북도 만들고, 직원 월급도 주고, 월세도 내고, 세금도 내야한다. 궁핍한 한국적 디자이너들의 일상 때문에 급여를 제대로 못 주는 일부 젊은 디자이너들도 있다. 분명 잘못된 부분이었고 그 행위에 대해서는 반성을 해야 하고 보상도 해야 한다.

 

하지만 과정은 무시한 채 결과만 보고 일부에서는 패션 디자이너들을 열정 페이니 청년 착취니하며 비난하고 있다. 일방적인 주장에 대한 검증없이 인터넷 매체와 타블로이드형 종편, SNS가 실어 날으는 확인되지 않은 '묻지마 복면 정보'는 일방적인 착취 시나리오를 만들어 '마녀 사냥가'를 합창했다. 하지만 열정 페이를 말하기 전에 과연 열정을 가지고 일하는 인턴들이 얼마나 있었을까에 대한 자문은 없었다. 성공 스토리 보다는 절망 스토리가 도배를 하는 상황에서 희망이 보이지 않는 패션 청년들의 좌절은 깊어만 갔다. 그나마 있던 열정도 눈물이 되어 사라졌다. 결국 남의 잘못을 지적하기 전에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자성적인 성찰과 토론도 필요했지만 객관성을 상실한 인터넷 매체와 종편 미디어의 묻지마식 경쟁적인 폭로 레이싱은 성과없는 상처만을 남겼다. 패션 디자이너라는 커리어는 대학 졸업 후 바로 실무를 진행할 수 있을 정도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머리로 생각하고 발로 뛰어야 하는 예열의 시간이 필요한 소위 3D 업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청춘들이 패션 디자이너를 원하는 이유는 잘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고 싶기 때문이고 성공 뒤의 보상도 크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마치 아이돌 스타들이 그 오랜 시간 연습생 시절을 거쳐 세계적인 k-팝 스타가 된 것과 같은 이치다.    

 

누구는 말한다. 능력 안 되면 직원을 쓰지 말라고. 그래서 직원을 안 쓰면 대학을 졸업하는 패션 디자이너 지망생들은 어디로 가는가? 그럼 패션 디자이너가 되는 것을 포기하고 타 학과 학생들과 경쟁해 공무원 시험이나 삼성과 같은 대기업 입사 시험을 준비해야 할까? 참 고민이 되는 부분이다. 나날이 아웃소싱이 늘어가는 현 패션계 상황에서 디자이너 비중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결국 수요보다 공급이 많은 대한민국 패션 교육 실정을 그대로 둔 채 열정 페이와 실습생, 인턴 문제점만을 부각하는 것은 본질을 무시한 채 탁상공론만 하는 꼴이다. 패션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단언컨데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몸으로 때우는 편의점이나 레스토랑, 주유소 알바와 패션 스튜디오에서 일하는 인턴들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둘의 차이점을 살펴보면 알바는 꿈이 없지만, 패션 스튜디오 인턴은 꿈이 있다는 점이다. 루머가 아닌 팩트에, 탁상공론이 아닌 본질에 더 귀를 기울이고 판단할 줄 아는 현명한 시각이 필요할때다. 얼마 전 어린 아이를 무참하게 때린 유치원 선생님을 빨리 구속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런 일이 벌어진 원인을 찾아 바로 잡는 것이 우선이라는 말이다. 사후약방문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릭 오웬스의 패션쇼가 끝난 후 남근 노출에 대해 여론은 세계 각국 남녀노소마다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놓고 있다. 모두 맞는 말이다. 하지만 모두 틀린 말일 수도 있다는 점에 유의하자. 같은 토크 콘서트를 두고 한쪽은 통일 콘서트라고 주장하고 한쪽은 종북 콘서트라고 주장한다. 둘의 의견을 제3자의 입장에서 들으면 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각각 북한의 입장과 남한의 입장을 대입하면 결국 하나의 의견에 동조할 수 밖에 없다. 본질은 통일인데 현상은 분열과 대립이다. 릭 오웬스 패션쇼 남근 문제나 최근의 토크 콘서트와 열정 페이 논란 또한 서로간 입장 차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즉 너는 '틀리다'가 아닌 나와 '다르다'라는 마인드 전환이 필요하다. '틀리다'와 '다르다'는 가까운 듯 아주 먼 이웃이다. 과거사와 독도 영유권에 대한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일본과 우리나라처럼 말이다.  

 

어쨌든 릭 오웬스의 패션쇼 파문을 조금 옹호했다고 해서 올 3월 서울 패션 위크에서 남근 노출을 선보여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패션쇼 위에서의 남근 노출은 아직 우리나라에서 다수가 수용하기에는 어려운 동방예의지국(?) 유교 국가다. 그에 대해 일부 옹호하겠지만 마녀 사냥식으로 낭패를 당할 수 있기 때문에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또한 이미 릭 오웬스가 선보였기 때문에 카피로 오해받을 확률도 크다. 2015년의 화두로 소통과 배려를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올해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으로 서로를 보듬는 한 해가 되길 고대해 본다.

 

글 유재부 패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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