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칼럼 | 2015-01-16 |
침체냐 재도약이냐 기로에 선 패션시장, 통큰결단이 필요하다
갑작스레 바뀐 소비지형과 유통 패러다임 변화를 읽지못한 국내 패션 유통업계가 성장 정체와 수익성 저하라는 경고등이 켜지며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다. 직구 등 소비자 역습에 무기력해진 패션기업들이 침체냐 재도약이냐 대전환기에 놓여있으며 기존의 낡은방식에서 벗어난 총체적 구조개혁과 체질 개선에 대한 통큰 결단이 요구되고 있다.
우리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은 스마트 혁명은 불과 몇 년 사이에 패션기업의 기획 판매방식 등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으며 더이상 애국소비가 호소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백화점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과 상품가격, 패션기업들의 신뢰가 무너지면서 내수기반의 뿌리를 해외 온라인 쇼핑몰에 빼앗기고 말았으며 백화점 유통 및 패션기업 주도의 가격 결정권도 소비자에게 넘어가 버렸다.
해외 트렌드를 적극적으로 읽고 대처하는 소비자들의 글로벌 소통능력이 높아지고, 해외 구매사이트에서 실시간 가격정보와 환율변동을 체크하고 확인하는 것은 이제 익숙한 풍경이 됐다.
더이상 호갱이 되지 않겠다는 집단지성앞에 대다수의 패션 유통기업들이 무기력해지고, 더 싼곳을 찾아내는 스마트한 소비자들의 역습을 받는 상황으로 주도권이 바뀌었다. 퇴보를 거듭하고 있는 패션산업 지형도에 더 큰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유통공룡으로 불렸던 백화점들은 고가정책과 부동산 임대 형식으로 편하게 매출을 올리는 방식을 고수하며 안일한 경영을 펼친 결과 성장이 멈춰섰다.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에도 매출이 11% 성장률을 기록하며 3년 연속 두 자릿수 성장률을 달성했던 백화점들은 2012년부터 성장세가 꺾이기 시작해 신세계백화점은 지난해 11월까지 전년대비 0.2% 성장에 그쳤으며 롯데백화점, 현대백화점도 3.5% 성장에 그쳤다. 최근 백화점들이 옴니채널, 아울렛·쇼핑몰 복합화 등으로 변화를 꾀하고 있지만 한국 유통시장이 완젼 경쟁시장에 노출되며 앞으로 더욱 혹독한 시기가 다가올 것으로 예상된다.
고가의 명품 브랜드와 편안한 쇼핑, 차별화된 서비스를 지향하던 백화점 유통업체들의 독점적 지위는 무너지고 소비자들은 더 이상 백화점 판매방식을 거부하고 해외직구에 직접 뛰어들었다.
초창기엔 몇몇 국가와 물품에 한정됐던 해외직구는 이젠 아예 경계가 없어지고 가전제품, IT기기, 화장품, 의약품, 패션, 식음료 등으로 아이템이 확대되고 있다. 미국 중심이었던 해외직구는 FTA와 함께 중국, 독일, 스페인, 영국, 일본 등 국경도 초월했다. 해외직구 시장은 지난해 이미 1조원을 돌파했고, 5년 뒤에는 8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등 국내 유통업계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백화점과 아웃렛 등 오프라인 유통에 의존해 상품을 판매하던 패션기업들도 각 분야에서 소비자의 역습을 받고 있다. 지금까지 패션기업들은 온라인 태동 브랜드를 철저히 비주류 패션으로 취급해왔으며 온, 오프라인 소비자가 각각 다르다는 인식하에 아예 경쟁 대상으로 보지않고 마이너 리그로 평가절하했다.
스트리트와 온라인 태동 브랜드들을 '싸구려' 취급하고 백화점에서 파는 고가의 상품과는 별개로 취급하는 동안 이들 브랜드들은 젊은이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업고 패션 변방에서 핵심부로 영역을 확대하며, 제도권 패션기업을 위협하는 주도세력으로 위상이 높아졌다. 시공간 장벽이 사라지고 소비자들의 상품 구매방식이 급변하는 동안 제도권 패션기업들은 그들 고유 영토를 내주고 다양한 분야에서 공격과 위협을 받으며 생존위기에 직면해 있다.
전국에 가장 많은 점포를 보유한 롯데백화점은 평균 36%대의 높은 수수료를 스스로 포기하고, 동대문발 온라인,스트리트 브랜드에 20%대의 파격적인 수수료를 제안하며 이들 브랜드를 대폭 수용, 이를 계기로 온라인, 스트리트 브랜드들은 제도권 유통에 더욱 깊이 들어왔다.
롯데백화점의 기존의 틀을 깬 파격적인 MD개편과 함께 온,오프라인 유통경계를 넘나드는 온라인 및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는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고 있으며 이에따라 동대문발 브랜드의 혼합구성으로 ‘백화점은 고급 유통채널’이라는 인식도 깨지고 있다.
모바일, 온라인, 홈쇼핑, 해외직구 등 다양한 유통업태가 한데 뒤섞여 경쟁하는 탈 유통화 시대에 패션기업들의 경쟁범위는 더욱 넓어지고 경쟁의 툴 자체도 바뀌었다. 소비자들은 보다 깐깐해지고 냉정해졌으며 해외 직구는 일상화되었다. 2015년 현재 치명적 딜레마를 안고 있는 우리 패션기업들이 당면한 현실이다.
우리보다 20년 먼저 장기불황의 길을 걸어온 일본의 도심형 할인점인 돈키호테, 패션브랜드인 '무지'와 '유니클로' 등은 상품 경쟁력과 혁신적인 서비스를 통해 불황속에서 급격한 성장을 이룩했으며, 처한 환경이 유사한 국내 패션 유통기업들 역시 이 사례에서 생존전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또 소비 구조의 환경 변화에 민감하게 대처하는 획기적인 인식전환도 요구되고 있다. 동일한 소비구조 변화의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운명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1990년대 디지털 카메라의 등장 이후 세계 필름 시장을 지배하던 코닥과 후지필름의 행보는 서로 달랐다. 코닥은 1991년 190억 달러에 달하던 매출이 2003년 130억 달러로 추락할 때까지도 여전의 필름 중심의 사업 구조를 유지했다. 뒤늦게 디지털 카메라 관련 신규 사업에 도전하다가 결국은 2012년에 도산한다.
반면 후지필름은 2000년까지 필름 사업의 매출 비중을 19%로 축소했고 2011년에 이르러서는 전체 매출의 불과 1% 수준까지 줄였다. 후지필름은 현재 디지털 카메라 렌즈의 세계 시장점유율 50%를 차지하고 있다. 필름 사업에서 축적한 콜라겐 활용 기술이나 사진 색을 바래지 않게 하는 황산화 기술을 활용한 화장품 사업, 유기합성 기술을 활용한 의약품 사업에 진출했다. 그 결과 전체 매출의 50% 이상을 이와 같은 새로운 사업들이 차지하고 있다.
2015년 패션시장에 극적인 반전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과거와 같은 고도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운 저성장 시대에 국내 패션 유통기업 스스로가 낡은 규제와 패러다임을 버리고 자성의 목소리와 함께 고객들의 눈높이에 맞춘 컨텐츠, 가격구조, 판매방식 등 기존의 틀을 깬 일대 혁명이 불가피해졌다. 내수시장과 해외시장의 경계가 사라진 지금 현실에 안주하며 혹독한 댓가를 치루거나, 아니면 새로운 시도와 구조개혁, 체질개선으로 더 큰 도약을 위한 통큰 결단이 필요해지고 있다.
패션엔 류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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