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칼럼 2014-03-17

강추 패션 다큐멘터리 10선

패션은 살아있는 역사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패션만큼 다이나믹한 분야는 없을 것이다. 특히 픽션을 통해 왜곡된 패션에 대한 이미지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팩트를 기반으로한 살아있는 패션 다큐멘터리는 패션 그 이상의 패션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좋은 재료일 것이다. 패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반드시 봐야할 10편의 패션 다큐멘터리를 소개한다


다큐멘터리 감독들에게 패션은 무한한 영감의 원천이다. 패션 다큐멘터리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지금, 패션인들에게 SF 블록버스터 못지않은 다큐 한 편이 공개된다. 바로 <디올과 나(Dior et Moi)>로 주인공은 디자이너 라프 시몬스다. 지난해 디올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된 라프 시몬스가 첫 디올 쿠튀르 컬렉션 과정을 다루었다.



유서 깊은 패션 하우스와 천재 디자이너의 역사적인 만남을 찍은 감독은 프랑스 출신의 프레데릭 정이다. 그는 이미 패션 다큐 의 공동 제작 및 편집자로 발렌티노 제국을 탐험했고, 감독으로서 패션의 전설이자 미국 <보그> 편집장을 거친 다이애나 브릴랜드의 전기를 다룬 를 연출했다. 이번에는 오트 쿠튀르 컬렉션을 준비하는 라프 시몬스의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담았다. 화려한 캣워크에 가려 자칫 놓칠 뻔했던 패션쇼 뒷얘기를 보여줄 이 다큐멘터리는 뉴욕에서 열리는 제13회 트라이베카 영화제의 월드 다큐멘터리 경쟁 부문에 진출해 오는 4월 17일 상영될 예정이다.


패션은 살아있는 역사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패션만큼 다이나믹한 분야는 없을 것이다. 특히 픽션을 통해 왜곡된 패션에 대한 이미지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팩트를 기반으로한 살아있는 패션 다큐멘터리는 패션 그 이상의  패션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좋은 재료일 것이다. 패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반드시 봐야할 10편의 패션 다큐멘터리를 소개한다.




시네 샤넬(Signe Chanel)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 샤넬의 오트 쿠튀르 컬렉션의 창조 과정을 탐구하는 다큐멘터리 <시네 샤넬>은 스케치에서부터 패션쇼 무대에 오르기까지의 전 과정을 다섯 파트로 나누어 소개하는 리얼 다큐다. <시네 샤넬>에서는 샤넬의 상징적인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가 디자인을 마친 후 패션쇼에 올라갈 의상이 제작되는 과정과 함께, 무대 뒤에서 묵묵히 일하는 장인들의 모습이 공개된다. 특히 파리 깡봉가 아뜰리에서 작업하는 화이트 코트를 입은 봉재사 팀에 포커스를 맞추었다. 75세의 나이에도 밤을 새우며 작업하는, 평생 샤넬 장식 끈만 만들어온 장인 할머니 레이몬드 포지엑스(Raymonde Pouzieux)를 통해 샤넬 브랜드 못지  않은 열정을 느낄 수 있다. 할머니는 1947년부터 샤넬에서만 일했다. 마감시간에 맞추느라 바쁘게 움직이는 동작과 의상이 완성됨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경쾌한 클래식 음악과 조화를 이루며 웃음을 자아낸다. 만약 다음의 리스트에서 한편만을 보고 싶다면 이 다큐를 강추한다.


발렌티노: 마지막 황제(Valentino: The Last Emperor)





2008년에 제작된 <마지막 황제>는 발렌티노가 은퇴할 즈음인 2005년부터 2007년 마지막 오뜨 꾸뛰르 까지를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디자이너 발렌티노 가라바니와 더불어 그와 50년을 함께했던 사업 파트너이자 연인 지안카를로 지아메티가 구축한 패션 왕국을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한다. 특히 50년을 함께 한 지안카를로 지아메티와 발렌티노는 매번 싸우고, 다투고, 삐지고, 울고, 화해한다. 화면에서도 발렌티노가 훈장을 받고 연설을 하면서 지안카를로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순간, 사람들은 박수를 치고 발렌티노와 지안카를로는 눈물을 보인다. 영화에는 칼 라거펠트와 톰 포드, 도나텔라 베르사체, 조르지오 아르마니도 나온다. 특히, 쇼가 끝나고 나서 돌아가면서 인사할 때 아르마니와 오랫동안 포옹을 하는 장면은 무척 감동적이다.


다큐멘터리는 발렌티노 가라바니가 또래 소년들이 꿈꾸었을 것 같은 소방수나 기관차 운전사와 같은 직업 대신 왜 하필 여성복 디자이너가 되었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어린 시절 그에게 영감을 준 것들을 조명한다. 흑백 영화면 속 화려한 의상들, 그 의상을 입은 미녀들, 아름다운 가구, 예쁜 집 중 발렌티노는 자신이 이런 아름다운 것들에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미학에 관한한 그는 완벽주의자였다. 그에게 완벽함이란 우아함의 또 다른 표현이다. 헤어 & 메이크업, 무대 디자인, 컬렉션 장소 등 자신의 영역이 아닌 것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불평하고 화를 내며 자신이 그린 그림과 근접한 결과물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비서나 어시스트에게 핏대를 높이고 악담을 퍼붓는 고집불통 할아버지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와 박수를 받은 뒤 외로운 어깨를 하고 트렌치코트를 입고 파트너와 함께 공원을 거니는 그는 언론으로 부터 '후임에게 왕좌를 물려줄 날이 멀지 않았다"는 공격에 시달리는 늙은 호랑이다. 아직 좀 더 일하고 싶다는 욕망에도 불구하고 그를 인터뷰하는 기자들은 '현존하는 최고의 거장' 발렌티노를 "대체 언제 은퇴할거냐?"는 가십성 질문으로 모욕한다.


1997년에도, 2003년에도, 2009년에도 발렌티노는 "발렌티노의 시대는 끝났다" "대체 언제 은퇴할거냐?"는 잔인한 코멘트를 감내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2013년 가을/겨울 시즌에 보란 듯이 컬렉션을 발표한다. 우아한 여왕이 사랑스러운 공주를 만난 것 같은 룩으로 패션쇼를 선보인다. 일생을 패션에 바친 세계적인 디자이너의 명암을 냉정하게 비교할 수 있기에 마치 디자이너 평전을 보는 듯하다.


셉템버 이슈(The September Issue)




패션에 관심이 있는 학생이라면 누구나 패션 잡지에서 일하는 꿈을 꾸었을 것이고 적어도 패션지를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특히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통해 패션 잡지<보그> 미국판의 이야기가 공개되면서 패션 에디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 영화는 패션지 <보그> 미국판 편집장 애나 윈투어의 리얼 스토리를 다루고 있다. 영화 <악마를 프라다를 입는다>가 허구성이 가미된 팩션이라면, 이 영화는 잡지사의 리얼 라이프를 다루고 있다. 2009년 9월호 <보그>가 탄생하기 위한 8개월의 과정을 보여주는 이 영화에서, 애나 윈투어 뿐만 아니라 보그 잡지를 만들어 가는 에디터들의 실제 라이프도 만날 수 있다. 여기에 애나 윈투어의 센스있는 코디와 사무실, 집도 만날 수 있고 그와 사사건건 의견 차이를 보이는 모델 출신의 패션 디렉터 그레이스 코딩턴과의 대결도 주목을 끈다.


한 해의 시작이라 불리는 패션계의 9월, 그 중에서도 <보그> 미국판의 9월호는 세계 패션의 판도를 이끌어 간다. 한 권의 책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수개월 간 그곳에 모든 아이디어와 에너지를 쏟아 붓는다. 시에나 밀러의 표지 화보 활영을 중심으로 아이템을 정하는 기획회의부터 최고의 에디터들이 열정적으로 의상과 화보 구성을 가지고 끊임없이 고민하는 모습이 여실히 보여진다. 치열한 과정을 거쳐 최종 결정된 아이템으로 디자이너들을 만나고 의상을 선택하고 화보 촬영이 시작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다. 얼음 공주라 불리는 편집장 안나 위투어와 세계 최고의 에디터들이라 불리는 이들이 모여 있는 <보그> 안에서는 수많은 감정의 폭발이 생겨나 <보그>의 제작이 순탄치 만은 않다. 최고의 안목과 센스를 가진 그들 사이에서는 갈등과 긴장이 조성되고, 화보 아이템 결정 때부터 안나 윈투어와 에디터들 사이에 의견 차이로 서로를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기 힘들어 한다. 하지만 결국 그들만의 사인과 호흡으로 갈등을 뛰어넘은 창조적 조화를 통해 가장 멋지고 화려한 '셉템버 이슈'를 완성해 간다. 이들을 옆에서 지켜본 RJ.커틀러 감독은 "보그의 창조적인 작업 과정에서는 여러 제스처와 눈치, 감각, 마지막 5초 동안의 짧은 대화만으로도 모든 일이 훌륭히 진행된다"고 말할 정도로 그들만의 세계는 밀착되어 있으며 조직적이다. <셉템버 이슈>는 패션의 중심 뉴욕에서 시작해 전 세계 트랜드를 이끌어 가는 안나 윈투어의 카리스마 넘치는 결단력과 앞서가는 감각은 그녀가 패션계의 교황으로 군림하는 이유를 보여준다. 패션 에디터를 꿈꾸는 이들에게 강추.


마드모아젤 C(Mademoiselle C)




전 세계 패션 디자이너들의 뮤즈로 활약을 펼쳐 온 카린 로이펠트. 수년간 패션계에 몸담아 온 그녀의 업적을 입증하듯, 영화 속에는 패션계의 저명한 인사들과의 화려한 인맥들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녀는 스타일리스트 시절부터 함께 작업해 온 디자이너 톰 포드를 시작으로 칼 라거펠트, 장 폴 고티에, 도나텔라 베르사체, 조르지오 아르마니, 알렉산더 왕 등 전 세계 패션 디자이너들과 오랜 친분을 자랑하며 영화 속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뿐만 아니라, 배우 사라 제시카 파커, 커스틴 던스트, 모델 케이트 모스, 가수 카니예 웨스트, 비욘세 등 할리우드 셀러브리티들과도 친분을 과시, 초호화 인맥을 보여준다. ‘프렌치 시크룩’이라는 패션 트렌드의 창시자로 다른 이들이 따라올 수 없는 스타일을 완성해내며 디자이너들에게는 뮤즈로, 셀러브리티들에게는 패션 아이콘으로 불린다. 패션뿐만 아니라 뷰티, 광고 등 다양한 영역에서 콜레보레이션을 통해 때론 모델로 때론 스타일리스트로 유감없이 능력을 발휘하는 카린 로이펠트는 한번 친분을 맺으면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카리스마와 사람을 사로잡는 리더쉽을 자랑하며 영화 속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카린 로이펠트의 일상을 고스란히 담아낸 <마드모아젤C>는 주인공 카린 로이펠트를 비롯하여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의 솔직한 모습과 패션쇼, 화보 촬영, 잡지를 창간하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생생히 담겨 있어 극영화와는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18살에 모델로 데뷔한 카린 로이펠트는 엘르 스타일리스트를 거쳐 파리 보그 편집장까지 오른 패션 에디터다. <마드모아젤 C>는 리얼리티 무비답게 카린 로이펠트의 패션에 대한 생각, 그녀의 가족, 친구, 동료, 일에 대한 도전, 꿈과 열정 등을 리얼하고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다. 영화에서 그녀는 디자이너들과의 친분은 물론 새로운 잡지 창간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녀의 모습부터 패션 에디터가 아닌, 한 여인으로서, 한 가정의 아내로서의 모습까지 엿볼 수 있어 눈길을 끈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모든 세계적인 패션쇼에 참석해 스타일의 동향을 파악하는 한편, 패션의 아이콘답게 꾸준한 자기관리로 시종일관 시크하면서도 패셔너블한 스타일을 선보인다. 손녀가 태어나며 유모차를 미는 할머니가 됐지만 “나는 하이힐을 사랑한다.”라는 말처럼 패션에 대한 열정과 사랑으로 다시 새로운 도전을 펼치는 카린 로이펠트의 일과 삶에 대한 모든 것을 솔직하게 담아냈다.


빌 커닝햄 뉴욕(Bill Cunningham New York)




스트리트 사진의 선구자인 84세의 현역 포토그래퍼인 빌 커넹햄을 다룬 <빌 커닝햄 뉴욕>은 패션계의 8년에 거친 설득 끝에 완성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커닝햄은 50년 이상에 거쳐 매일 자전거를 타고 뉴욕의 길거리에 나서서, 개성이 넘치는 사람들의 패션을 계속해서 찍어왔다.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사토리얼의 블로거 스콧 슈만이라는 스트리트 포토그래퍼 이전에 처음으로 스트리트 패션을 사진기 플레임 속에 담은 인물이 있다. 바로 <뉴욕타임즈>의 스타일섹션 중 스트리트 포토를 담당하고 있는 사진작가 빌 커닝헴이 그 주인공이다. 단순히 럭셔리한 사람들을 담는 것이 아니라 패션 라이프를 담아내는 포토그래퍼로 스콧 슈만이 가장 존경하는 분이라고 포토그래퍼라고 말한다.


<뉴욕타임스>에서 긴 시간 동안 칼럼을 연재한 그는, 안나 윈투어도 인정할 정도로 패션업계에서 이름을 알려온 유명 포토그래퍼지만 그의 패션은 매우 단순하다. 파리의 도로 청소부가 입는 파란 작업복은 제복처럼 애용하고 있다. 카네기홀의 위쪽에 있는 스튜디오는 방대한 네거필름을 수납하는 캐비닛과 간이침대가 있을 뿐, 식사에는 많은 신경을 쓰지 않는다. 매 시즌 컬렉션이나 파티에서는 화려한 업계 인들에게 둘러싸이지만 사생활은 검소함 그 자체라고 한다. 이 다큐멘터리는 “최고의 패션쇼는 항상 길 위에 있다”를 신조로 정열적으로 셔터를 계속해서 누르는 빌 커닝햄의 매력적인 모습을 투영한 작품이다. 자기관리를 통해 일에 매진하고 피사체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는 그의 삶의 방식은 영험하고 보고 있는 우리에게도 교훈을 안겨준다.



다이아나 브릴랜드: 더 아이 해즈 투 트레블(Diana Vreeland: The Eye Has To Travel)



 

패션을 통해 세상의 따분함에서 탈출하고자했던 불세출의 패션 저널리스트 다이애나 브릴랜드. <하퍼스바자>와 <보그> 편집장을 거쳐 뉴욕 메트로폴린탄 미술관의 복식연구소에서 패션계를 위해 헌신했던 그는 모노키노를 대중화시키고 마놀로 블라닉을 명품 구두 디자이너로 인도한 사람이기도 하다. 2012년 상영된 브릴랜드의 패션 철학과 삶에 대해 다룬 헌정 다큐멘터리 '다이아나 브랠랜드>는 그녀가 세계 패션사에 남긴 흔적을 차분하게 다루었다.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브릴랜드의 거실은 일본풍의 사치스러운 화려함과 80년대 풍요로움이 담긴 패션의 보고를 보고 있는 느낌이다.


다이아나 브랠랜드는 1903년 파리에서 태어나 1989년 뉴욕에서 사망한 여성 패션 컬럼니스트이며 패션 잡지 편집자다. 패션계의 영향력 있는 인사 중에 한명이었던 다이아나는 1867년 창간된 미국 여성 패션 전문 잡지 <하퍼즈 바자>에서 경력을 시작했다. 이어 <보그>지와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의상연구소에서 패션 관련 일들을 하며 1965년 국제 베스트 드레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패션계의 전설 중에 한명으로 알려져 있다. 리사 이모르디노 브리랜드, 벤트-요르겐 펄무트,  프레데릭 청등 세 명이 공동으로 연출한 이들의 장편 영화 감독 데뷔작으로  2011 터론토 국제영화제에 출품되었다.



마크 제이콥스 & 루이 비통(Marc Jacobs & Louis Vuitton)





2007년에 제작된 다큐 영화 <마크 제이콥스 & 루이비통>. 패션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에 관한 이야기다. 판타지라는 별빛 가루로 갈색 가죽 가방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게 만든 마법사이자 만지는 모든 것을 금덩이로 만드는 뉴욕 패션계의 마이더스 마크 제이콥스는 마약과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난 듯하더니만 루이 비통 쇼의 우아한 피날레에서는 혀를 내밀고야 마는 앙팡 테리블이기도 하다. 파리와 뉴욕을 오가는 마크를 추적하며 다큐멘터리를 촬영한 로익 프리정 감독은 그 모든 모습을 합한 것이 결국 마크 제이콥스라고 말한다. 다큐에는 그의 뮤즈인 소피아 코폴라 감독을 비롯 우마 서먼, 데미 무어, 애나 윈투어 등 절친도 등장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LVMH 회장 베르나르 아르노의 결단으로 루이비통에 기용된 마크 제이콥스는 첫 패션쇼에서 전혀 가방을 내놓지 않아 경영진들을 경악시킨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 매 시즌마다 신제품을 내놓고 대 히트를 기록, 다시 한 번 경영진들을 놀라게 한다. 늘 스타들에게 둘러싸여 사는 마크 제이콥스는 미국 패션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CFDA 상을 7번이나 수상한 대단한 경력의 소유자. 문제가 되었던 약물과 술을 끊은 뒤에도 흡연 습관은 버리지 못한 그이지만 패션에 관한 한은 늘 미국의 선두주자로 꼽힌다. 그가 이런 능력을 발휘하는 데는 측근들의 힘도 큰데, 그 중 하나가 동업자인 로버트 더피. 루이비통과의 협상 때도 마크의 곁을 지켰던 그는 지금도 밤이나 낮이나 마크를 떠나지 않고 있다. 이외에도 여러 재능 있는 팀원들의 절대적인 충성 속에 마크 제이콥스는 매 시즌마다 자신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 멋진 신제품들을 내놓는다. 하지만 이런 천재도 비켜갈 수 없는 것이 있으니, 바로 창작의 고통. 사람들을 열광시키는 멋진 의상과 가방은 마크와 그의 팀이 치열하고 고통스런 작업 끝에 탄생시킨 결과물이다.


자체 브랜드의 뉴욕 패션쇼를 무사히 끝낸 마크 제이콥스 앞에 다시 펼쳐지는 3주 뒤의 루이비통 쇼 준비. 뉴욕 패션쇼에서 완전히 소진해 버린 아이디어를 새로이 짜내야하는 작업은 고통 그 자체다. 그렇다면 마크 제이콥스는 어떻게 영감을 재충전할까? 밀착된 카메라 앞에 결국 모습을 드러낸 그의 아이디어 원천은 바로 예술. 마크는 작업이 없을 때면 화랑과 현대미술 전시장, 경매장 등을 돌며 미술품을 감상하고 좋은 작품을 사들이며 두뇌를 재충전한다. 그는 원하는 작품이 있으면 곧장 화랑으로 돌진하는 스타일. 초상으로 시작, 미국 현대미술을 거쳐 추상으로 움직이고 있는 그의 취향은 화가 엘리자베스 페이튼도 높게 평가할 정도로 상당한 경지에 올라 있다. 여러 화가들과의 두터운 친분을 자랑하는 그이지만, 그러나 마크는 카메라 앞에 그의 미술품 컬렉션을 공개하지 않고, 그 부분에 관한 한은 말을 아끼는 신중함을 보인다.


재미있는 것은 패션계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통하는 그에게도 콤플렉스가 있다는 것. 한때 그는 자신의 작업이 예술보다 한 치 아래 있다는 열등감에 시달렸으나 엘리자베스 페이튼의 격려로 자신감을 되찾은 바 있다. 그는 예술가들과의 만남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이는 때로 콜라보레이션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그에게 영감과 함께 큰 자산으로 남기도 한다. 일본의 팝 아티스트 무라카미 다카시를 루이비통 가방 작업에 끌어들인 것은 이미 마케팅의 교과서로 통용되는 사례이고, 또 다른 현대 미술 작가 쿠사마 야요이와의 만남을 통해 그는 물방울무늬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어 물방울무늬가 들어간 가방을 만들어낸다.


언지프드(Unzipped)




더글라스 키브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언지피드>는 미국의 패션 디자이너 아이작 미즈라히에 대한 이야기로 인터뷰할 때의 흑백 화면과 현장감을 살린 컬러 화면이 묘한 대비를 보여준다. 옷에 대한 영감을 얻는 이야기부터 패션쇼 현장이 공개되기까지의 과정을 다루고 있다. 덤으로 영화 속에서 90년대 최고 수퍼모델 나오미 캠밸과 신디 크로포드, 린다 에반젤리스타, 케이트 모스 등을 만날 수 있다. 한 마디로 이 영화는 디자이너와 모델에 관한 이야기다.


디자이너 아이작 미즈라히는 90년대에 주목 받던 미국 디자이너들 중에 하나다. 그는 디자이너로 데뷔 후, 얼마 되지 않아 미국 패션 협회가 해마다 시상하는 CFDA상을 수차례나 받았을 정도로 디자이너로서 탄탄일로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그런 그도 사업 부진의 이유로 자신의 사업을 접고는 한 동안 뜸하더니, 타고난 끼는 어쩔 수 없었는지 가끔 씩 영화나 연극에 출연하기도 했으며, 토크쇼 진행자로도 활약했다. 그러다가 몇 년 전에는 미국의 중저가 유통 업체인 <타켓>과 손을 잡고, 싼 가격으로 대중화시킨 자신의 컬렉션을 대중에게 선보였으나 마케팅의 실패로 그다지 성공적인 결과를 얻지 못하기도 했다. 이 후 그는 또다시 자신의 이름을 건 고가라인의 옷을 뉴욕 컬렉션에서 다시 선보이고 시작했고, 아이작에 대한 가장 최근의 소식은 얼마 전, 미국의 여성복 업체인 리즈 클레이본에서 그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입했다는 정도다.


이 영화는 특별한 줄거리 없이 일정기간 아이작 미즈라히의 일상을 쫓아다니는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흑백과 컬러 영상을 번갈아 사용하여 내용을 채워 간다. 영화 속에서 바로 전 시즌, 패션 비평가들에게 좋지 않은 평가를 받은 그가 새로운 시즌을 위한 컬렉션을 준비하는 과정을 담고 있는 이 영화에서 아이작은 성공한 디자이너로 부각되기 보다는 한 명의 직업인으로서의 모습이 더 크게 부각되어진 모습이다. 영화를 보면, 우리가 그 세계에 대해 알건 모르건 역시나 삶의 이면에 던져진 우연과 운명의 장난이 얼마나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똑같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이 영화 이 후 아이작 미즈라히의 삶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는 영화 속에서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갖는 화려함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이 이 영화를 보면서 그저 세상에 존재하는 하나의 직업을 바라보는 진지하고도 보편화 된 시각으로 바뀌게 됨을 알 수 있다.


이 영화는 한 시간으로 축약 된 패션 쇼 준비 과정에 헌정이라도 하듯 마지막을 그 고난의 결과물인 패션쇼를 클라이맥스로 장식하며 끝을 낸다. 그것을 통해 우리는 그 당시 활동하던 대부분의 슈퍼 모델들을, 그리고 광란의 백 스테이지를 들여다 볼 수 있다. 그 후 우린 아이작 미즈라히가 다음 날 신문에 난 호평을 읽으며 잠시나마 숨을 돌리는 모습을 만나게 된다. 그 화려함 뒤에 다시 보여 지는 그의 일상의 삶이 상대적으로 얼마나 고독한지도 엿볼 수 있다. 그것은 그의 삶이 가지고 있는 연속성 때문일 것이다. 쇼를 끝내자마자 또 다시 다음 컬렉션을 준비해야 하는 디자이너로서 피 말리는 삶이 주는 연속성,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우리가 다른 사람의 인생에 대해 “그래도 당신은 성공한 사람 아닌가!”라며 말하는 것이 얼마나 그릇 된 미덕인지를 일깨워 준다.


애니 레보비츠: 렌즈를 통해본 삶




잡지 <롤링스톤>, <베니티 페어>, <보그>의 포토그래퍼로서 기념비적 사진을 남겨온 포토그레퍼 애니 레보비츠. 피사체의 모든 것을 이끌어내는 것으로 유명한 데 비해 철저하게 숨겨져 왔던 그녀 자신의 이야기가 드러난다. 영화 <애니 레보비츠: 렌즈를 통해 들여다본 삶>은 샌프란시스코의 평범한 학생이었던 그녀가 격동의 70년대 <롤링스톤>지에서 시작해 조지 클루니, 커스틴 던스트를 촬영하는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성공과 실패의 기록은 물론, 연인 수전 손택과의 추억, 아버지의 사망과 출산 등 명암이 엇갈리는 사적인 기록마저 한데 모으며 포토그래퍼 애니 레보비츠의 입체적인 초상을 완성한다. 그녀의 카메라 앞에 섰던 믹 재거, 오노 요코, 힐러리 클린턴, 베트 미들러 등과 현재 미디어 업계를 대표하는 셀러브리티들, 그리고 그녀의 가족들의 인터뷰가 함께 수록되어 생생함을 더 한다


잡지 <롤링 스톤>과 밴드 ‘롤링 스톤스’의 세대가 아니라면 애니 레보비츠의 이름은 저널리즘과 르포르타주보다 패션과 커머셜에 가깝게 다가온다. 그리고 으리으리한 세트에 거대한 선풍기를 돌려 연출한 할리우드 스타일의 사진들이 먼저 연상될 것이다. 해마다 <베니티 페어>의 커버를 장식해온 할리우드 배우들의 ‘떼샷’을 떠올려라. 애니 레보비츠는 그들 모두를 한달음에 카메라 앞에 세우는 권력의 소유자다. 20대에 사진기자로 출발한 그는 13년 동안 <롤링스톤>의 커버를 촬영했다. 닉슨이 떠나는 쓸쓸한 백악관의 풍경, 나신의 존 레넌이 요코를 끌어안은 유명한 커버, 성(聖)스러운 어머니의 모습과 여인의 성(性)적인 매력이 공존하는 데미 무어의 만삭 누드 등이 그에게서 탄생했다. 물처럼 무리에 흘러들어 사진을 찍는 레보비츠에 대해 사람들은 입을 모은다. “애니는 그곳에 없었다.” 한때 롤링 스톤스의 투어를 따르다 심각한 약물중독까지 겪었던 그의 삶은 <베니티페어>로 경력을 이동하며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자연스러운 가운데 누구도 보지 못한 모습을 찾아내던 이전과 다르게, 인물이 가진 이미지를 드러내려 다양한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한다. 특히 그는 많은 유명인을 피사체로 둔 레보비츠의 명성은 거물급 증인들을 대동한다. 힐러리 클린턴, 안나 윈투어, 아놀드 슈워제네거, 믹 재거, 미하일 바르시니코프가 한 번씩 이름을 언급하는 것 만으로 그는 대단한 사람이 된다. “미국의 지성” 수전 손탁의 임종을 사진으로 남기며 증명한 둘 사이의 관계 역시 그렇다. 하지만 이 모든 증언들이 수박 겉핥기에 그쳐 애니 레보비츠라는 인물은 영화를 통해 한층 더 멀어진다. 그 얄팍함을 견디게 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인물이 애초에 지녔던 거대한 매력이다


노라 노(Nora Noh)






85세의 패션디자이너 노라노는 오늘도 변함없이 옷을 만들고 있다. 그녀는 1956년에 한국 최초로 패션쇼를 개최하고, 윤복희의 미니스커트와 펄시스터즈의 판탈롱을 스타일링한 장본인이다. 그리고 노라노는 1963년에 최초로 디자이너 기성복을 생산하기도 했다. 더 저렴한 가격에 더 멋진 옷을 만들어, 이제 막 사회에 들어선 많은 여성들을 응원하고 싶었다. 60여년을 넘게 여성을 위해 옷을 만들어온 그녀는 지금, 어느 날 불쑥 찾아온 젊은 스타일리스트와 함께 자신의 패션사를 정리하는 전시회를 준비한다. 옛 의상을 복원하고, 옷과 함께 흘러온 자신의 인생과 그 시대를 다시 무대에 올린다 


다큐멘터리 <노라노>는 국내최초 패션 디자이너 노라노의 반세기 패션사를 담은 작품이다. 다큐 <노라노>에는 1956년 대한민국 최초로 패션쇼를 개최하고, 파리의상조합에서 기성복 시스템을 결정하기 전인 1963년에 기성복을 시작하였으며, 1974년 국내 브랜드 최초로 미국 Macy’s 백화점 1층 전면에 입점하는 등 대한민국 패션사의 주요한 장면들을 만들어 낸 노라노의 업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여성의 인권, 지위 등에 관한 사회적 논의가 전무했던 시절, 옷을 통해 여성들의 정체성을 확립시켰던 디자이너 노라노의 ‘여성으로서의 삶’에 대한 기록 또한 섬세하게 담겨 있다.


노라노 60주년 기념 전시회 ‘라비 앙 로즈 La Vie en Roase전’을 기획했던 스타일리스트 서은영은 “코코 샤넬, 소니아 니켈, 비비안 웨스트우드 등과 같은 선상에서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내 나라의 디자이너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 현실이 슬펐다. 이제는 대한민국 패션사의 뿌리를 찾아야 할 때가 아닌가”라는 이야기를 통해 역사의 순간들로만 남아 있는 현재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을 전한 바 있다. 이러한 안타까움에 대한 답변처럼 60주년 기념 전시회 이후 노라노를 재조명하는 움직임들이 이어지고 있다. 2013년 ‘F/W 서울패션위크’에서 디자이너 노라노의 일대기를 담은 필름이 행사기간 내내 관람객들에게 공개되며, 10월 30일부터 12월 15일까지 디자이너 노라노의 패션사를 회고하는 기획전시가 신문박물관에서 진행되는 등 대한민국 패션계의 뿌리를 찾고자 하는 다양한 활동들이 이어지고 있다. 영화 <노라노>의 개봉은 그러한 흐름을 더욱 가속화함으로써 패션계에 새로운 흐름을 낳을 것으로 기대된다.


패션엔 유재부 기자

kjerry38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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