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2017-08-08

20년간 여자의 마음을 뒤흔든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2개의 '잇백'

다이애나 왕세자비는 자신의 이름으로 명명된 두개의 핸드백을 가진 패션 아이콘이다. 크리스찬 디올의 '레이디 디올' 백과 페라가모의 '레이디-D' 숄더 백이 그 주인공. 그녀가 우리 곁을 떠난지 어느새 20년이 지났지만 두 개의 '잇백'은 여전히 스테디셀링 클래식으로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현대 여성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면서 꼭 갖고 싶은 아이템이 되는 가방을 보통‘잇백(It Bag)’이라 부른다. 해마다 수많은 가방이 출시되지만 시대를 초월해서 사랑받는 '잇백'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뮤즈'가 있다는 점이다. 단순한 패션 액세서리인 핸드백이 뮤즈의 손에 들려지는 순간 '영원한 아이콘'이 되는 셈이다.


먼저 1977년 에르메스는 모니코 왕비 그레이스 켈리의 이름을 딴 '켈리 백'을 선보였으며, 1984년에는 영화 배우로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영국 배우 제인 버킨을 위해 특별 제작한 토트 백인 '버킨 백'이 선보였다. 이후 꾸띄르 하우스들은 매력적인 고객들의 이름을 가방에 붙이는 작업을 잠시 중단했다. 그러나 다이애나가 패션 아이콘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한 90년대 들어 다시금 뮤즈의 이름이 들어간 핸드백이 등장했다.


크리스찬 디올의 '레이디 디올' 백과  브랜드 심벌인 말발굽 모양의 '간치오' 잠금 장치가 돋보인 페라가모의 '레이디-D' 체인 스트랩 숄더 백이 그 주인공으로 두개의 잇백은 클래식으로 남아 그녀를 기억하게 해준다. 덕분에 두 브랜드는 여전히 그녀 덕분에 돈을 벌고 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핸드백이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이름을 따서 대중화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일반인들은 그리 많지 않다.


훤칠한 키와 아름다운 미소, 밝고 활달한 성격으로 사후 20년이 지난 지금도 영국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다애애나는 시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의 근엄하고 전통적인 패션과 대조되는 다양한 스타일의 패션을 선보이며 주목을 받았다.



동화같은 신데렐라가 될 운명을 맞은 다이애나는 런던 풀햄 로드에 있는 패브릭 매장 '쏠레이야도'에서 판매하는 프로방스풍의 퀼팅 백을 특히 좋아했다. 각각 다른 플로랄 디자인 백 5개를 한꺼번에 구입하기도 했다. 왕세자비가 된 이후에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여왕 어머니, 마가렛 공주와 같은 왕족의 옷차림 규칙을 준수해야 했다. 왕족의 일상적인 가방은 왕실 조달 허가증 소지자인 샘 루너가 만든 것으로, 군주제의 상징을 나타냈다.


다이애나 왕세자비는 수년 동안 다양한 럭셔리 핸드백을 수집하는 동안, 블랙 퀼팅의 디올 사첼 백과 많은 페라가모 크로스바디 파우치를 자신의 상징적인 '잇백'으로 만들었다. 오늘날 이 두 브랜드는 여전히 잇백으로 꾸준히 판매되며 수익을 올리고 있다.


왕실에서의 규칙은 옷차림 코디였다. '슬론 레인저 핸드북'이 1980년에 요약한 바에 따르면, "잘자란 소녀는 신발과 가방을 스스로 코디하는 경향이 있는데 공식적인 행사의 드레싱 코드는 좀더 엄격해 다이애나는 1981년 결혼식 리허설 후 '너무 많아!'라고 소리치며 스튜디오에서 눈물을 흘렸다"고 디자이너 데이비드 사순은 회상했다.        



젊은 왕세자비 다이애나는 왕실 규칙을 준수하며 종종 그녀의 드레스메이커들이 직접 이브닝 봉투 스타일 가방 등을 만들었지만 1990년 이탈리아 브랜드 살바토레 페라가모를 구입하기 시작했다.


다이애나는 '레이디-D'로 명명된 독특한 골드 '간치오' 잠금장치가 있는 송아지 가죽 페레가모 백을 20개 이상 소유하고 있었다. 1990년대 중반쯤다이애나는 해외 꾸띄르 브랜드를 동시에 참용하며 왕실 의례를 완벽하게 강화했다.



녀의 가방 옷장에는 디올, 베르사체, 샤넬, 구찌 등이 있었다. 다이애나의 광택있는 유럽식 가방은 찰스 왕자와 헤어진 독립의 상징이었다.


파리 패션 하우스 중에서 가장 유명한 브랜드 샤넬은 프렌세스 다이애나가 입을 수 있었던 최초의 외국 브랜드 중 하나였다. 보통 영국인이 만든 가방과 의류을 착용하는 것이 왕실 의례였으나  다이애나가 프랑스를 방문하는 동안 초대 국가에 헌정의 의미로 샤넬 제품 사용을 허용했다. 그녀는 1988년 프랑스 공식방문에서 샤넬의 클래식한 퀼트 체인 백에 레드 코트를 선보였다.


그녀의 자의식이 투영된 샤넬 백 중 특히 체인 스트랩이 있는 핸드백은 찰스 왕세자와 헤어진 후에도 많이 사용했다. 1997년 6월 워싱턴에서 열린 적십자 랜드마인 캠페인을 지지하는 생애 마지막 공식 행사에서 그녀는 라일락 베르사체 슈트같은 비즈니스 룩에 화이트 퀼트 탑-핸들 샤넬 백을 들었다. 물론 신발도 샤넬 제품이었다.



1990년대 중반에 다이애나는 다른 브랜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미국 '하퍼스 바자' 편집장 리즈 틸베리스, '보그' 사진작가 마리오 테스티노 그리고 디자이너 지아니 베르사체를 포함한 패션 전문가들에 둘러싸인 다이애나 왕세자비는 세련된 스타일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지아니 베르사체와는 엘튼 존과 에이즈 자선 단체를 통해 만났다. 그녀가 입은 심플한 컬러 블록의 베르사체 옷은 새로운 제트-셋 미학의 시작이었다.


광택이 나는 베르사체 백은 별도의 액세서리를 매치하지 않아도 그녀의 매끄러운 테일러링을 돋보이게 했다. 그녀는 지아니 베르사체 추모식에 참석하기 위해 밀라노 두오모에 갔을 때 블랙 버전의 가방을 들고 있었다. 그녀의 친구인 지아니 베르사체는 1997년 7월 마이애미에서 살해당했으며, 1개월후 다이애나도  파리에서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1995년 당시 프랑스 퍼스트레이디 베르나데트 시라크는 폴 세잔 회고전 개막식에 참석한 다이애나에게 크리스찬 디올의 신상 가방을 선물했다. 처음 가방 이름은 연인이나 친구처럼 아끼는 사이에 부르는 용어인 '슈슈'였다. 이후 다이애나는 여러 행사에서 디올 백을 들었고 심지어 같은 핸드백을 다양한 버전으로 디올에 주문하기도 했다. 결국 이 가방은 고급스럽고 귀족적인 다이애나 이미지와 조화를 이루며 대중들 사이에 인기를 얻고 품귀 현상도 일어난다.



결국 크리스찬 디올 측에서는 ‘레이디 다이애나 스펜서’에게 경의를 표하는 의미로 핸드백에 ‘레이디 디올’라는 새로운 명칭이 붙었다. 이 레이디 디올 백은 당시 전 세계에서 10만개 이상 판매되었으며 패션사에 남을 만한 ‘잇백’신화를 창조했다.


교통사고로 프린세스가 우리 곁을 떠난지 20년이 지났지만 영원한 패션 아이콘 다이아나를 잊지 못하는 사람들로 인해 레이디 디올 백의 인기는 여전하다. 베스트셀링 아이템이 된 레이디 디올 백은 여전히 3,000파운드에 팔리고 있다.  


한편 영국 디자이너 안야 힌드마치는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다이애나의 핸드백에 얽힌 일화를 소개했다. 1993년 런던 월튼 스트리트에 작은 가방 디자인 숍을 낸 그의 단골 중 한 사람이 바로 다이애나였다.


힌드마치에 따르면 다이애나는 매우 소탈한 성격으로 가끔은 경호원 없이 혼자 가게에 들르곤 했다고 한다. 힌드마치는 “당시 새틴 소재의 작은 클러치백을 디자인했는데 어느날 다이애나 왕세자빈이 그 백을 ‘가슴골 클러치(Cleavage Clutch )’라고 불렀다"고 회상했다. 


다이애나는 자동차에서 하차할 때마다 카메라 플래시를 피하기 위해 작은 클러치로 드레스의 가슴 골을 가리고 내렸다. 파파라치와 사진기자들은 가슴이 깊게 파인 드레스를 자주 입었던 다이애나가 자동차에서 내리는 순간을 애타게 기다렸지만, 그때마다 다이애나는 매번 쿨하게 클러치를 이용해 이들의 카메라 세례를 피했다고 한다.


크리스찬 디올의 '레이디 디올' 백








페라가모의 '레이디-D' 체인 스트랩 숄더 백








크리지비 클러치 백






패션엔 유재부 기자
kjerry38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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