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칼럼 2014-07-30

100년전 1차 세계 대전이 여성복을 '앤드로지너스트'로 만들었다.

짧아진 헴 라인, 코르셋의 종말, 그리고 여성을 위한 바지의 등장으로 100년 전부터 여성복의 변화가 시작되었다. 1차 세계 대전의 영향으로 패션계는 침체되었지만 이를 계기로 여성복의 본격적인 모더니즘이 일어나 치마 길이는 짧아지고, 실질적이면서도 기능적으로 변화했다. 남성들의 전쟁 참가로 부족한 노동력 충당을 위해 여성들이 직업 전선에 참여하였고, 자연스럽게 여성복은 편안하고 실용적인 앤드로지너스 룩으로 진화하게 되었다. 그리고 패션에 있어 전쟁의 영향은 오늘날 패션쇼 무대에서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패션 디자이너에게 전쟁의 영향은 오늘 패션쇼에서 선보이는 몇몇 컬렉션에 영향을 미치며 지속되고 있다. 뉴욕 기반의 디자이너 톰 브라운이 지난 6월에 열린 파리 남성복 컬렉션에 참가했을 때 관객들은 회색 유니폼을 입은 제 1차 세계 대전의 병사의 행렬을 볼 수 있었다.


 1914년 한 광신적인 보스니아 민족주의자가 오스트리아 왕자를 향해 쏜 총탄이 전 세계를 전쟁으로 몰아넣었다. 오스트리아의 세르비아에 대한 선전포고로 시작되어 1918년 독일의 항복으로 끝난 세계적 규모의 전쟁이었다. 영국은 191484일 제1차 세계대전에 참가했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지금 1차 세계대전 100주년은 맞아 전사자에 대한 추모 촛불 행사를 비롯한 패션 전시회와 축하 이벤트를 통해 100년이 지난 세계 대전이 재조명되고 있다.

 

패션계 역시 예외는 아니다. 영국과 뉴질랜드에서 열리는 다양한 전시회는 헴 라인이 올라간 것부터 전쟁터로 떠난 남편 대신 혼자 집에 남은 여성들이 입었던 유틸리티 의상까지 전쟁이 여성의 복식에 어떤 영향을 비쳤는지 재조명하고 있다. 일부 여성들은 전쟁 중 국내에 남아 남편 대신 일하기 위한 새로운 직업에 종사하기 위해 자신의 옷을 남편의 옷장에서 찾기 시작했다.

 

국가 총력전 형태로 진행된 1차 세계 대전은 유럽 각국의 사회 체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국가 시스템 자체가 전쟁을 위해 돌아갔다. 한명이라도 더 많은 남자를 전선으로 보내야 했던 만큼 전선의 시장은 급박했기 때문에 유럽 국가들은 귀족이든 공장 노동자든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남자라면 누구나 징집 대상이 되었다. 결국 남자의 빈자리는 여성들의 몫이었다. 중산층 이상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여성들은 사무직으로, 노동자 계층의 여성은 군수공장에서 군수품을 만들었다.

 

기존의 남자들이 하던 일을 여성들이 대체함으로써 직업에서의 남녀 구분이 점차 의미가 없어졌다. 이러한 여성 근로자들을 위해 보급형 생리대가 개발되었다고 한다. 여성들의 목소리가 비로소 커질 수 있는 사회적 토대가 생긴 셈이다. 영국의 경우에는 전쟁 중에도 사회적, 정치적 권리 향상을 위해 끝없이 투쟁했고 결국 영국 정부는 여성들에게 참정권을 허용했소 곧 여성 의원도 배출하는 나라가 되었다.


 

1차 세계 전쟁 중 여성들은 패션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게 되고, 노동복, 유니폼, 상복 등을 많이 착용하게 되어 패션의 쇠퇴시기로 평가된다. 이 시기 많은 여성들이 전쟁에 나간 남성들 대신 일자리를 채우면서 직장을 가지게 되었다. 여성들은 종군 간호사로 직접 전선에 나가거나 공장에서 일했으며, 배달 운수업에 종사하거나 기술자로 일했다.

 

온라인 뉴질랜드 패션 뮤지엄에서 오픈한 전시회 In Service and On The Street>의 큐레이터 도리 드 폰트는 남자들이 전쟁터로 떠날 때 여성들은 농장이나 공장 작업 같은 주로 남성들이 주도했던 일에 종사하기 시작했다. 직업의 육체적인 강도로 볼 때 전통적인 여성의 복장이 적절치 않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여성들은 급하게 남성들의 옷장과 변경된 셔츠, 그리고 바지를 자신에 맞게 입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반면 배스 패션 뮤지엄(Bath Fashion Museum)에서 열리는 전시회 는 오는 831일까지 열린다. 이 전시회에서는 1차 세계 대전 24년간 등장했던 의상이 선보인다. 특히 전쟁이 시작한 이후 선보인 유니폼과 민간인 복장, 기념품 그리고 선전용 아이템 등이 선보이는데, 이때는 여성들이 바지를 입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전시회 주최자 이본느 헬린 홉스는 1차 세계 대전은 전쟁터로 떠난 건강한 남자들을 대신해 힘든 일을 해야 했던 여성들의 삶을 변화시켰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이유로 여성들의 패션은 변화 과정을 거쳤다. 코르셋은 부드러워졌고 의류는 실용적으로 변했다. 일부 워킹 우먼들은 처음으로 바지를 입었다고 말했다.


 

베스 전시회는 영국 저널리스트 케이트 에비의 책 에서 영감을 얻었다. 책에서 애비는 여성들이 자국의 삶의 그림자로 부상하면서 필수적인 역할은 운송에서 부터 경찰, 군수품제조,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심지어 정치에 까지 미쳤다. 그들은 자신의 권리를 가진 시민이 되었고 전쟁의 승리에 기여했다고 밝혔다.

 

한편 뉴질랜드 전시회 는 일반 대중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1,2차 세계 대전이 담긴 60장의 사진을 전시하고 있는데, 이 사진들은 뉴질랜드에서의 공모를 통해 수집해 사진마다 관련된 스토리를 제공했다. 전시회에 선보인 이미지는 8월에 <글로리 데이즈> 매거진을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전시회 사진들에 대해 큐레이터 도리 드 폰트는 뉴질랜드의 다락과 오래된 수트케이스” “실제 사람들이 어떻게 옷을 입고 상호 작용을 했는지, 그리고 사토리얼 스타일이 전쟁 기간 중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보여주는 이미지라고 설명했다. 이어 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난 100년 전으로 가까이 갈수록 병사나 전쟁에 관련된 사람뿐 아니라 매우 힘든 시간 동안 불을 피우며 집을 지킨 여성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삶에 변화는 주는 시간이었음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1, 2차 세계 대전의 영향은 의류의 실질적인 정착과 가까이에 있는 제한적인 소재의 발명적 사용 등 두 부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패션은 모든 것이다. 하지만 전쟁터이던 자국이든 전쟁 기간 동안 중지되었다고 도리 디 폰드는 말했다. 전쟁 기간 동안 본격적으로 배급이 시작되면서 도리 드 폰트의 관심은 재료의 제한이 유니폼 뿐 아니라 민간 복장의 창의적이고 절약하는 아이디어에 어떤 영향으로 미쳤는가 하는 문제였다. 전쟁 기간 동안 올라갔던 헴 라인을 생각해 보라. 전쟁이 끝났을 다시 헴 라인은 내려갔기 때문이다

   

 

전쟁 이전에 뉴질랜드는 '영국의 농장'으로서의 역할로 번창했다. 도리 드 폰트에 의하면 특히 여성들은 런던과 파리로 부터 최신 패션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러나 뉴질랜드와 호주는 전쟁으로 큰 타격을 받았다. “1차 세계 대전 중에 벌어진 연합군의 갈리폴리 전투는 연합군의 참패 뿐 아니라 놀랍게도 뉴질랜드 부대의 88%가 사망이나 부상을 당하는 결과를 낳았다. 19141백만의 인구였지만, 서부 전선의 막대한 손실은 집에 남아있는 뉴질랜드인들이 직 간접적으로 전쟁에 큰 영향을 받았음을 의미한다.”고 도리 드 폰트는 말했다.

 

패션은 손실을 반영한다. “의미를 부여하는 국민들에게 허세를 부리는 드레스는 부적절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회색 음영을 포함한 소박하고 차분한 컬러는 '배틀십'으로 유행했지만 보석과 화려한 장식 요소는 배제되었다.”고 도리 드 폰트는 말했다.

 

그러나 전쟁은 여성복의 모더니즘에 일조했다. “여성들은 전쟁동안 많은 자유를 얻었다. 그들은 여성들이 착용하는 적절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를 포함해 전쟁 이전의 젠더 개념으로 돌아가는 것을 꺼려했다고 도리 드 폰트는 설명했다. 이어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뉴질랜드에서는 전후 몇 년 동안 많은 여성들이 집 밖에서의 활동적인 생활을 철수하고 기정 생활과 코르셋 패션의 제약으로 얌전한 스타일로 돌아왔다. 다행히 패션 역시 이동을 했고 전쟁 직후 말괄량이 모습이 자유와 활동을 위해 만들어진 비정형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생생한 컬러가 섬유와 구술 장식과 자수로 등장했다. 파리와 런던의 패션은 전 세계가 따르면서 다시 유행이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파리는 더 이상 유행을 위한 유일한 가이드 포스트가 아니었다. 뉴욕이 전쟁 등 프랑스와의 어려운 커뮤니케이션 덕분에 패션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군수 산업의 확장으로 미국은 세계 경제에서 막강한 지위를 차지했다. 1차 세계대전 전 미국은 파리의 패션을 모방하고 상류 사회는 직접 수입에 의존해야 했으나, 전쟁 후는 <보그>를 주축으로 미국 디자이너를 중심으로 한 패션쇼를 열었다. 또한 빅애플은 기존의 여성스러움과 함께 실질적인 룩을 도입해 세계 패션계를 좌지우지했다.



1차 세계대전 중에 영국 군인들을 위해 개발된, 조밀한 조직의 트윌 코튼 개버딘 천에 방수 코팅을 하고 허리 벨트가 있는 트렌치코트가 디자인되었는데, 전쟁 후에도 유행했다. 이 방수 코트는 남성 레인 코트의 기본적인 의복이 되었으며, 후에 여성도 레인 코트로 착용하였다. 이후 영국 브랜드 버버리와 아쿠아스큐텀은 이 트렌치 코트 생산업체의 리더로 군림하게 되었다.

 

또한 1차 세계 대전 기간 중 여성들은 원피스 드레스보다는 투피스나 코트 드레스를 선호했다. 싱글 브레스트나 더블브레스트 재킷으로서 허리에 벨트를 맸다. 1916년경 스커트는 땅에서 6인치나 짧아졌고 남성용 테일러드 재킷의 밀리터리 룩이 유행했다. 그 안에 레그 오브 머튼 슬리브(leg of mutton sleeve)의 블라우스를 입기도 했다. 전쟁 기간에 군복의 영향으로 여성복에서도 헐렁한 무릎길이의 바지인 니커보커스와 승마용 짧은 바지가 출현했다. 전쟁으로 인해 여성의 의복은 길이가 점점 짧아지거나 심플한 스타일이 유행했다. 결국 이 시기에 여성 의복에서 남녀 구분이 없는 캐주얼(casual)이란 용어가 생겨났다. 결국 세계 대전의 경향으로 여성복은 남성복의 영향을 받아 양성적인 트렌드인 앤드로지너스로 진화하는 진화 과정을 겪게 된다.


글 유재부 패션평론가

kjerry38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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