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앤토크 | 패션 디자이너 Mary Quant | 2014-12-31 |
60년대 패션 레전드 마리 퀀트, 새해에 기사 작위 수여
미니 스커트를 세계적으로 유행시키며 '미니(Mini)라는 용어를 만들어 낸 영국 디자이너 마리 퀀트가 2015년 새해에 영국 왕실로 부터 2등급에 해당하는 기사 작위(Queen’s New Year’s Honours)를 받으며 Dame Mary Quant가 되었다.
60년대 패션의 레전드이자 미니 스커트 발명가(?)인 마리 퀀트가 영국을 대표하는 여배우인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 조안 콜린스와 함께 영국 왕실로 부터 기사 작위를 받는다. 1000% 핸드메이드로 만드는 영국 브랜드 캠브리지 사첼 컴퍼니의 설립자 줄리 딘은 대영제국 4등급 훈장(OBE)을 받는다.
참고로 대영 제국 훈장은 5등급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등급마다 줄수 있는 최대 인원수는 정해져 있다. 1등급: GBE(Knight·Dame Grand Cross of Order of the British Empire) , 2등급: KBE·DBE(Knight· Dame Commander of Order of the British Empire) , 3등급: CBE(Commander of Order of the British Empire). 4등급: OBE(Officer of Order of the British Empire) , 5등급: MBE(Member of Order of the British Empire) 등이다. 보통 2등급 이상의 훈장을 받은 사람에게는 3등급 이하와 구별되어 수훈자 이름의 앞에 남성의 경우는 Sir(경) , 여성의 경우는 Dame(여사) 의 칭호를 붙이기 때문에 1, 2등급(GBE, KBE · DBE)훈장은 기사작위(Knighthood · Damehood)에 해당한다. 따라서 대영 제국 훈장 1등급과 2등급은 작위급 훈장으로 본다. 한편 포상 내용은 영국 여왕의 기사 작위(New Year's Honours) 리스트를 통해 밝혀졌다. 그 명단에는 권위있는 타이틀을 선물받을 여배우 조안 콜린스와 커스틴 스콧 토마스 그리고 방송진행자 이스터 란첸도 포함되어 있었다.
미니 스커트를 대중들에게 선보인지 50년만에 기사 작위를 받는 올해 80세인 노장 마리 퀀트는 뉴스를 접하고 "무척 기쁘다"고 말했다. 그녀는 2006년에 기사 작위를 받은 동료 디자이너 댐 비비안 웨스트우드에 이어 디자이너로서 기사 작위를 받은 셈이다. 이제 그녀도 댐 마리 콴트라 불러야 할 것 같다.
마리 퀀트는 1934년 2월 11일 런던에서 태어나 독학으로 패션 디자인을 공부해 6세 때 침대보를 잘라 의복을 만들었고, 10대에 자신의 깅엄 스쿨 드레스를 수선해 짧게 만들었다. 후에 그녀는 특히 어린 시절 탭댄스 수업 시간에 보았던 블랙 스키니 스웨터와 플리츠 스커트에 화이트 발목 양말과 블랙 페이턴트 구두 그리고 타이츠를 신은 한 아이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기도 했다.
골드스미스 컬리지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전공한 후 메이페어 여성용 모자 회사에서 견습생을 거쳐 1950년대에 자신의 레이블을 설립했다. 이어 1955년에는 남편 알렉산더 플런켓 그린과 사업가인 아치 맥네어와 함께 런던의 가장 힙한 거리 킹스 로드에 부티크 <바자(Bazaar)>를 오픈했다.
영 부티크 <바자>는 독특하지만 단순하고 깔끔한 아동복과 같은 젊고 신선한 의복과 스카프, 모자, 주얼리 등 액세서리, 독특하고 기묘한 잡동사니들로 반체제의 정서를 표현했다. <바자>는 점차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이는 당시 ‘젊은이의 반란’으로 일컬어지던 것을 최초로 구현한 것이었다. 마리 퀀트는 새롭게 출현하고 있는 대중문화를 활용한 최초의 인물로, 모즈와 록커와 같은 하위 청년문화의 영향을 영감의 원천으로 삼았다. 어쩌면 마리 퀀트는 <바자>를 통해 패션 체케바라를 꿈꾸었는지 모른다.
마리 퀀트의 상징은 미니 스커트였다. 1962년부터 스커트 단이 올라가기 시작했고 점차 무릎 위로 올라가 1960년대 중반에는 허벅지에 닿을 정도였다. 1964년은 이른바 미니 스커트의 길이를 정의 내리게 되는 시대였다. 퀀트는 미니 스커트라는 1960년대 청년 혁명의 아이콘이자 젊은 여성들을 위한 즐겁고 섹시한 의복으로, 런던이 스트리트 패션의 중심지가 되도록 길을 열었다. 미니 스커트의 유행은 불과 몇 개월 만에 퀀트의 부티크로부터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갔고, 스윙잉 런던의 10대 소녀들을 사로잡았다.
그런데 미니 스커트를 창조한 사람이 메리 퀀트인지, 아니면 프랑스 디자이너 앙드레 쿠레주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쿠레주는 “내가 미니를 발명한 사람이다. 마리 퀀트는 다만 그 아이디어를 상업화했을 뿐이었다”라고 했고, 퀀트는 그의 주장을 일축하면서 “그것은 프랑스인들의 방식이다… 나는 상관없지만 그건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과 다르다… 아마도 쿠레주가 처음으로 미니스커트를 만들었을지는 모르지만,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당시에 어느 누구도 그것을 입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논란은 다소 과장된 것이며, 마리 퀀트는 다음과 같이 부언했다. “여하간 미니 스커트를 발명한 것은 나도 쿠레주도 아다. 미니를 발명한 것은 킹스 로드의 소녀들이었다. 나는 활동이 쉽고 젊어 보이는 단순한 의복을 만들었는데, 그것을 고객들이 원하는 길이대로 만들어주었다. 나는 미니를 매우 짧게 만들었는데, 고객들은 심지어 나에게 “더 짧게, 더 짧게”라고 외치곤 했다."
마리 퀀트는 입기 편한 단순한 형태와 구조의 의복들을 디자인했다. 그러나 그녀는 기존의 패션 공식을 뒤집었으며 젊은 패션을 추구하는 소비층을 위한 ‘퀀트 룩’을 만들어, ‘부티크 패션의 창조자’로 알려지게 되었다. 퀀트는 주로 미니 스커트 길이의 점퍼 스커트, 튜닉, 서스펜더가 달린 주름치마, 니커스, 플레이 슈트에 눈에 띄는 컬러의 타이츠를 조합하는 등 아이 같은 기성복을 디자인했다. 그녀는 의외의 패턴에 밝고 터무니없는 컬러들을 조합하였고 체크 소재와 폴카도트 패턴을 결합하기도 했으며, 이브닝 소재에 플란넬을 사용하고 쇼츠 슈트에 새틴 소재를 적용하고, 긴 끈이 달린 숄더백을 발명하였다. 또한 퀀트는 코트와 부츠 등 패션에 PVC를 사용한 최초의 디자이너가 되었으며, 최초로 니트웨어에 다양한 컬러의 팬티스타킹을 도입하였고, 패션 란제리를 도입한 최초의 디자이너가 되었다.
1966년에 그녀는 패션 산업에 대한 뛰어난 서비스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영제국 4급 훈장(OBE)을 받았으며 70년대와 80년대에 걸쳐 핫 팬츠와 메이크업을 위한 라인으로 혁명적인 패션 행보를 계속했고 이때 일본 전역에 그녀의 옷과 화장품에 대한 유통 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마리 퀀트는 자신의 회사가 일본 기업에 인수된 직후인 2000년에 마리 퀸트 기업의 디렉터를 사임했다. 그러나 브랜드는 주로 메이크업과 스킨케어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는 일본에서 대단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마리 퀀트는 1982년 <가디언> 지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 시절 우리는 사회적 혁명의 한 중심에 놓여 있었다. 갑자기 경기가 호황을 타고 있었으며 우리는 이러한 호황기의 첫 세대로, 젊지만 돈이 있었고 따라서 자신을 위한 문화를 창조할 자유가 있었다… 미니스커트는 그 일부였다. 그것은 매우 활기 넘치고 순수한 분위기였다. 돌이켜 보면, 그것은 여성운동의 시작이었다…”
어쩌면 영국 왕실의 마리 퀀트에 대한 기사 작위 수여는 미니 스커트라는 유행의 측면과 여성 운동이라는 역사적 측면을 함께 고려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따라서 패션은 늘 사회와 역사와 대중과 함께 하는 멀티 문화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20세기 패션의 르네상스라고 불리는 60년대의 중심으로 활약한 마리 퀀트의 기사 작위 수여를 축하한다.
패션엔 유재부 기자
kjerry386@naver.com
<참고 자료=네이버캐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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