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칼럼 2017-05-12

오드리 햅번과 지방시의 40년 소울메이트 사랑과 우정

퀸의 계절 5월이면 떠오르는 패션 아이콘 오드리 헵번. 그녀의 인생에서 디자이너 위베르 드 지방시와의 40년 사랑과 우정을 빼놓을 수 없다. 프랑스 디자이너 위베르 드 지방시와 평생 동안 소울메이트 사랑과 우정을 유지했던 그녀는 생전에 지방시가 디자인한 수많은 드레스를 영화와 실생활에서 입었던 뮤즈이자 후원자이자 평생 고객이었다.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스타일 아이콘 오드리 햅번은 시간을 초월한 룩과 우아함으로 햅번 룩이라는 유산을 남겨 놓았다. ‘아름답다는 말로는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그녀는 영화 로마의 휴일로 스타덤에 올랐고 지방시와 만난 이후 여러 영화를 통해 햅번 룩을 유행시키며 패션 트렌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마릴린 먼로와 같은 풍만한 몸매를 가진 글래머러스한 스타가 주목을 받던 시절이라 가냘픈 몸매를 가진 오드리 햅번이 주목을 받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결국 그녀는 자신의 개성을 살려 노출을 최소화하고 자신의 매력인 잘록한 허리 라인을 강조하는 새로운 스타일을 시도했고 결과는 폭발적이었다.




전 세계 많은 여성들은 그녀의 스타일에 열광하며 따라 하기 시작했다. 패션은 물론 그의 헤어스타일과 라이프 스타일까지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그녀의 패션 아이콘으로서의 변신에는 특별한 남자가 있었다. 비로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 지방시의 창시자 위베르 드 지방시로 그는 세기의 패션 아이콘 오드리 햅번의 거의 대부분의 영화 의상을 제작하며 햅번 룩을 탄생시키는 데 일조했다.


40년 지기 친구이자 진정한 소울 메이트인 오드리 햅번과 위베르 드 지방시는 한 때 약혼까지 할 정도로 사랑하는 사이였지만 결국 결혼이 아닌 우정을 선택해 1993년 그녀가 죽을 때까지 디자이너와 뮤즈로 평생을 함께 했다.


오드리 햅번은 디자이너 위베르 드 지방시에 대해 그가 만든 옷은 나를 표현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옷이다. 그는 쿠티리에 그 이상이며 개성의 창조자다"고 말할 정도로 둘의 사랑과 우정은 패션으로 통했을 통했다. 둘의 영화 같은 스토리를 만나보자.

 


위베르 드 지방시와 오드리 햅번은 1953년부터 전설적인 관계를 시작되었다. 미국 디자이너 랄프 로렌은 "나는 오드리가 지방시에게 영감을 주었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두 사람은 절대적으로 협력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그녀는 지방시로 부터 오드리 햅번의 모든 것을 뽑아냈다"고 말했다.


이어 대해 오드리 햅번은 "미국 여성들이 심리치료사에게 의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지방시에 기댔다. 그는 나에게 룩과 다정함과 실루엣을 선물했다"고 말했다. 1993년 오드리 햅번이 사망하자 위베르 드 지방시는 오드리 햅번의 장례식 때 관을 직접 운구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오드리 햅번에 대해 위베르 드 지방시는 "오드리가 보여 준 모든 스타일은 그녀 자신의 것이다. 그녀는 컬렉션에서 작품을 고를 때 모두 스스로 선택했다. 그녀는 독특하고 개인적인 스타일에 대한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파스텔, 블랙 그리고 아이보리에 때때로 핫 핑크를 가미해 입는 것을 선호했다. 또한 그녀는 어떠한 특정한 드레스가 마음에 들면, 블랙과 화이트 두 가지 모두 주문하곤 했다라고 회상했다.


두 사람이 함께 유행시킨 아이템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으며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전형적인 대표적인 패션 아이템은 카프리 팬츠, 슬림한 트라우저, 블랙 터틀 넥, 발레 플랫, 리틀 블랙 드레스, 심플한 이브닝 드레스, 실크 스카프, 플래시 햇, 트렌치 등이다.

 


오드리 햅번과 위베르 드 지방시의 인연이 시작된 것은 영화 <사브리나>부터였다. 영화 사브리나를 찍기 전 자신의 주연 데뷔작 로마의 휴일을 찍은 그녀는 육감적인 몸매의 마릴린 먼로가 주도하고 있는 당시 할리우드 영화계에서는 돌연변이 같은 존재였다. 파라마운트 영화사에서 제공하는 리무진을 거부하고 발레 슈즈 차림으로 걸어 다니거나 혹은 감독이 선물한 자전거를 타고 시내를 다니는 서민적인 행보와 더불어 신체적으로도 당시 표준인 육감적인 섹시한 몸매와는 거리가 먼 가슴이 작은 키 큰 말라깽이였다.


그러나 한때 마리 콴트의 옷을 입고 화보를 찍은 모델 출신답게 촬영을 쉬는 시간에 패션 잡지를 즐겨볼 정도로 패션에 관심이 많았다. 어쩌면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마른 신체 조건을 풍성한 A-라인 실루엣의 뉴룩을 통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낸 비결인지도 모르겠다.

 

영화 <사브리나>를 준비하면서 그녀는 감독에게 파리로 유학을 떠난 뒤 완벽하게 변신하여 아버지의 고용주가 사는 땅으로 돌아오는 주인공 사브리나 캐릭터가 진정성을 가지려면 그 장면에 쓰일 의상을 파리에서 직접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영화사 소속 전담 코스튬 디자이너 에디스 헤드가 있지만 실제 패션 디자이너에게 영화 의상 제작을 맡겨야 한다고 제안한 것이다. 결국 영화 제작사와 윌리암 와일더 감독으로 부터 프랑스 패션 디자이너 브랜드 사용에 대한 허가를 받아낸 짧은 머리의 당돌한 20대 신인 여배우 오드리 햅번은 의상을 공수하기 위해 홀로 파리로 향했다.

 


먼저 발렌시아가를 찾아갔지만 당시 인지도가 없었던 그녀는 단번에 거절을 당했다. 그래서 찾아간 것이 지방시 부티크였다. 당시 위베르 드 지방시는 루시앵 를롱과 스키아파렐리에서 보조 디자이너로 활동한 후 자신이 이름을 건 브랜드를 런칭한 후 성공적인 첫 컬렉션을 선보인 주목받는 신인 디자이너로 파리 패션에 정통한 오드리 햅번은 소문을 통해 그를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파리 세느강 남쪽 지역 카페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며 보헤미안과도 같이 자유로운 생활을 즐겼기 때문에, 기존의 딱딱한 오뜨 쿠튀르와는 다른 패션으로 인기를 얻고 있었다.

 

19536, 오드리 햅번이 지방시 매장을 방문했지만 직원 중 아무도 신인 배우였던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더욱이 영화 <로마의 휴일> 런던 프리미어가 한 달 뒤였고 파리에서는 상영 일정도 잡히지 않은 상태라 그녀의 얼굴을 알 리가 없었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위베르 드 지방시를 만났지만 그 역시 처음 오드리 햅번을 보고 처음에는 실망했다.


파라마운트 영화사의 프랑스 제작 지부장으로 부터 '미스 햅번'이 온다는 말을 듣고는 당시 유명 배우 '캐서린 햅번'으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지방시는 오드리 햅번에게 현재 두 번째 컬렉션을 작업 중이며 또한 직원이 거의 없기 때문에 영화 작업을 할 수 없다고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러나 오드리 헵번은 포기하지 않고 이번 선보인 첫 번째 컬렉션을 보았고 자신이 원하는 모델이 그 중에 있다면서 지난 시즌 드레스라도 괜찮다면서 계속 부탁했다. 결국 지방시는 그녀가 원하는 의상을 자신의 첫 컬렉션에서 선택하라고 제안했다.


그녀는 곧바로 영화 <사브리나>의 세 가지 장면을 위한 의상들을 골랐다. 그 첫 번째 의상은 겉면이 진한 회색 플란넬 소재의 슈트였는데, 오드리 헵번이 그 의상을 입고 발레의 한 동작처럼 한 바퀴 돌자 지방시는 그 착장에 장갑을 더해 스타일을 완성했다. 다음으로 끈 없는 하얀 오간디 드레스를 입었는데 마치 처음부터 지방시가 그녀를 위해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녀의 몸에 딱 맞았다.


마지막으로 검정 피케 면 소재에 물결무늬를 넣은 칵테일 드레스 역시 그녀를 위해 만들어 진 듯 허리 라인은 잘록해 보였고 스커트는 가볍게 너울거렸다. 특히 쇄골이 보이게 넓게 커팅된 보트 넥을 참조한 네크라인은 나중에 사브리나 데콜테라고 알려지게 됐고 피케 소재의 블랙 드레스와 함께 영화 개봉 후 지방시의 베스트셀러 아이템이 되었다.


한마디로 오드리 햅번이 고른 지방시의 첫 번째 컬렉션 의상들은 운명적이라고 할 만큼 그녀의 몸매와 완벽한 궁합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자신의 외모와 체형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으며 어떤 것이 가장 잘 어울리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이렇게 여배우 오드리 헵번과 디자이너 위베르 드 지방시의 운명적인 만남은 시작되었다.

 


또한 오드리 햅번은 영화 '사브리나'에서 지방시 의상 외에 몸에 딱 붙는 카프리 팬츠와 보트 넥 티셔츠, 가냘픈 몸매 라인을 그대로 보여주는 펜슬 스커트, 길고 마른 다리를 노출하는 하이웨이스트 반바지,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플랫 슈즈를 선보였는데 당시 젊은 여성들은 이 심플하고 웨어러블한 티셔츠와 바지, 플랫 슈즈에 열광했다.


또한 쇄골 라인에 컴플렉스가 있던 햅번을 위해 쇄골을 가리도록 디자인한 지방시의 보트 넥도 순식간에 유행했다. 여기에 두껍고 진한 각진 눈썹과 숏 커트 헤어 스타일은 햅번 커트, 혹은 픽시 커트로 불리며 대유행했다. 결국 영화 속 오드리 햅번 스타일은 베스트셀러 아이템의 보증 수표가 되었으며 그녀와 지방시가 만든 햅번 스타일은 패션계의 흐름을 바꾸며 새로운 트렌드를 창조했다.

 

영화 <사브리나> 이후 오드리 헵번은 그녀의 죽는 날까지 영화에서나 실생활에서나 늘 지방시의 의상과 함께 했다. 지방시만이 그녀에게 있어 유일한 이미지 메이커였을 뿐 아니라 1956년 이후부터는 오드리 헵번과의 영화 촬영 계약을 위해서는 반드시 디자이너 지방시가 제작한 의상을 영화에서 입어야 한다는 조항을 추가할 정도였다.


덕분에 두 사람은 약 8편의 영화에서 함께 작업했다. 아카데미 시상식을 비롯한 각종 레드카펫 행사에서도 늘 지방시 드레스를 입었다. ‘로마의 휴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할 때 입은 드레스 역시 지방시의 작품이었다.


오드리 헵번에게 지방시 의상을 고집하는 이유를 물으면 언제나 그의 의상을 입으면 나도 모르게 그냥 기분이 좋아진다라고 대답했다. 지방시 역시 패션에 있어 그녀와 나 사이에는 절대적이고 견고한 신뢰가 존재한다고 말하며 오드리 헵번에 대한 신뢰를 드러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었고, 오드리 헵번은 디자이너 지방시의 영원한 패션 뮤즈가 되었다.

 


영화 '사브리나'는 오드리 햅번에게 '로마의 휴일'에 버금가는 히트작이었다. 그녀는 위베르 드 지방시를 사브리나시사회에 초대했지만 두 사람은 지방시 이름이 필름 크레딧에 빠진 사실에 무척 실망했다. 조합 규칙에 따라 지방시는 멤버가 아니었고, 계약상 의무 사항 때문에 파라마운트 영화사의 수석 코스튬 디자이너 에디스 헤드의 이름이 항상 필름 크레딧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오드리 햅번은 그의 이름이 절대 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지방시에게 말했지만 이름이 올라간 것은 에디스 헤드였고 결국 그녀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의상상을 받았다. 이러한 때문에 오드리 햅번이 영화 촬영 계약을 할 때 반드시 디자이너 지방시가 제작한 의상을 영화에서 입어야 한다는 조항을 추가한 듯하다.

 

사실 오드리 햅번과 코스튬 디자이너 에디스 헤드 두 사람은 영화 '로마의 휴일'의 디자인 과정에서는 호흡이 잘 맞았지만 패션에 관심이 많은 오드리 햅번이 자신의 룩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생각의 차이가 생겼다. 때문에 에디스 헤드는 다른 스타 여배우의 취향에는 잘 적응한 반면에 오드리 햅번과는 손발이 맞지 않았다. 오드리 햅번의 마르고 키가 큰 납작한 체형과 긴 목을 에디스 헤드는 숨기거나 보정하려고 했지만 반대로 오드리 햅번은 더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당시 파리의 최신 유행을 잘 파악하고 있었고, 프랑스 몬테카를로 베이비에서 촬영하는 동안 들은 신인 디자이너 지방시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되었고 결국 코스튬 디자이너가 아닌 단순한 라인과 그녀에게 어울리는 모던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 젊은 쿠티리에를 선택한 셈이다.

 


영화 사브리나에서는 이름이 빠졌지만 위베르 드 지방시는 1957년 영화 '화니 페이스'에서 처음 필름 크레딧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화니 페이스의 수많은 의상은 거의 지방시 작품이었다. 영화 화니 페이스를 통해 서점 직원에서 패션모델로 변신한 오드리 햅번을 위해 지방시는 영화의 다양한 파리 장면에 나오는 많은 꾸띄르 드레스와 의상을 디자인했다.


이후 디자이너 위베르 드 지방시와 뮤즈 오드리 햅번은 티파니에서 아침을’ '하오의 연정' ‘백만 달러의 사랑’ '샤레이드' '뜨거운 포옹' '혈선' 등의 영화를 통해 20세기 영화 역사상 길이 남을 파트너가 되었고 신생 브랜드 지방시를 세계적인 인지도를 얻는데 일조했다.

 

위베르 드 지방시는 1927년 프랑스 보베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고블랭 과 보베 테피스트리 공장을 소유하고 있는 가족들 사이에서 자라났다. 따라서 태피스트리와의 연관성은 항상 그의 꾸띄르에서 중요한 요소로 간주되었던 직물에 친화력을 부여했다.


파리의 에콜 데 보자르(Ecole des Beaux-Arts)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한 그는 꾸띄리에 자크 파스 밑에서 견습생으로 일한 후 루시엥 르롱과 스키아파렐리에서 보조 디자이너로 일했다. 그러나 그의 스타일이 지배한 영향을 미친 것은 발렌시아가였으며 덕분에 두 사람은 절친이 되었다.

 


위베르 드 지방시는 1952년 자신의 쿠튀르 하우스(The House of Givenchy)를 오픈하고 이듬해 프랑스 일류 모델이었던 베티나 그라지아니를 기용해 첫 번째 컬렉션을 개최했다. 이때부터 지방시는 당시 파리 꾸띄르를 지배하고 있던 디올의 보수적인 디자인과 반대되는 젊은 혁신성으로 주목받았으며 심플한 소재와 깨끗한 라인은 그의 시그너처가 되었다.


지방시에 이 즈음 부터 오드리 햅번의 개인 옷장과 영화 의상 디자인을 모두 디자인했다. 그는 오드 햅번의 신체 사이즈(32-20-35)는 평생 동안 바뀌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한 위베르 드 지방시는 오드 햅번 외에 그레이스 켈리와 재클린 케네디를 위한 디자인도 함께 진행했다.

 

한편 단역 배우였던 오드리 햅번은 1953년 윌리엄 와일러 감독을 만나 영화 '로마의 휴일'을 통해 귀엽고 사랑스러운 공주 역할로 영화계에 등장해 스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글래머스하고 풍만한 여성상이 사랑받던 시절, 깡마른 몸매의 오드리 햅번은 기존의 대세와는 대조적인 이미지임에도 불구하고 관중들은 그녀의 스타일에 매료되었다.


특히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그녀가 선보인 짧은 헤어스타일과 잘룩한 허리선의 화이트 셔츠, 그리고 무릎아래 길이의 사랑스런 플레어스커트는 50년대에 크리스찬 디올이 처음 선보인 '뉴룩' 라인을 그대로 반영해 아직도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주는 요소다.

 


1953년 지방시와 만난 후 이듬해에 제작한 영화 '사브리나'에서는 170cm의 큰 키와 호리호리한 몸매를 잘 살린 룩으로 역사에 남을 '헵번 룩'을 만들어 냈다. 영화 사브리나에서 오드리 햅번은 특유의 개성 넘치는 패션 감각이 정점을 찍었다. 사람들은 그녀의 패션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지방시하면 오드리 햅번이 바로 떠올릴 정도로 그녀는 지방시 의상을 완벽하게 소화했고 지방시 역시 그녀만의 개성이 돋보이는 의상을 만들었다.


지방시의 의상은 마른 몸매를 의도적으로 강조했고 이는 전설적인 룩으로 패션계에 남았다. 영화를 위해 그가 직접 선택한 지방시 드레스는 마치 그녀만을 위해 만든 드레스 같았으며, 당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블랙 니트와 팬츠의 결합은 사브리나 팬츠또는 햅번 팬츠로 불리며 유명세를 탔다.


발목까지 알맞게 떨어지는 길이의 팬츠는 슬림한 그의 바디라인과 허리를 더욱 돋보이게 해주었다. 함께 매치한 살바토레 페라가모 플랫 슈즈는 오드리 햅번만이 소화할 수 있는 세련된 룩으로 완성시켜 주었으며 영화 개봉 후 패션계를 강타하며 여성스러움을 대표하는 슈즈로 자리매김 했다.

 

1961년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은 최고의 파트너십을 자랑했다. 영화에서 지방시의 뮤즈 오드리 햅번이 입었던 리틀 블랙 드레스는 당대의 패션 트렌드를 주도했다. 간결하고 기하학적인 라인이 돋보이는 지방시 디자인은 오드리 햅번의 마르고 곧은 몸매와 잘 어울렸다.


상류 사회를 동경하며 상류층 남자를 만나 신분 상승을 꿈꾸는 여주인공 할리 고라이틀 역을 맡은 오드리 햅번은 세기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문 리버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빵과 커피로 아침 식사를 하며 티파니 매장의 보석을 바라보는 장면으로 아직도 관객들의 뇌리에 남아있다.

 


큰 캣-아이 선글라스, 진주 목걸이, 긴 장갑, 시뇽 헤어 스타일은 마릴린 먼로의 아비 보리 색 드레스에 이어 20세기 영화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의상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 작품에서 그녀는 플로피 햇으로 포인트를 주었고, 모자와 스카프 등 액세서리를 이용한 코디는 지금도 응용되는 클래식한 패션이다.


지방시가 디자인한 이 작은 리틀 블랙 드레스는 2006125일 크리스티 경매에서 예약 판매 추정가의 7배인 85천만 원에 팔렸다. 영화에 나온 드레스로는 최고가였다. 수익금은 그녀의 아동 구호의 뜻을 살려 인도 빈민가 어린이들을 위한 시티 오브 조이 에이드자선단체에 기증되었다.

 

영화 '백만 달러의 사랑'에서도 지방시는 오드리 햅번을 위해 의상을 만든다. 영화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지만 '백만 달러의 사랑'에 나왔던 스타일은 지금 봐도 여전히 모던하고 세련되었다. 하얀 레이스 잠옷을 입고 침대에 누워서도 풀 메이크업은 물론이고 어렵게 부풀린 듯 한 멋진 숏 커트 머리를 한 채 히치콕의 사이코를 읽는 장면이라든가 그 잠옷 위에 그대로 레인부츠를 신고 핑크 코트를 걸친 채 외출하는 장면이 돋보인다.

 


또한 멋진 빨간 스포츠카에 특이한 화이트 모자와 슈트, 신발을 신고 선글라스를 끼고 나타난 장면 은 60년대 미니멀리즘과 스페이스룩을 연상시킬 정도로 인상적이다.


피터 오툴(드모트 역)이 미술품 도둑이라고 오해한 오드리 햅번(니콜)이 보넷가의 비너스를 훔쳐달라고 의뢰하기 위해 만나는 장면에선 선보인 누가 봐도 너무 눈에 띌 것 같은 검은 드레스와 검은 가면을 쓰고 등장해 니콜이란 캐릭터의 도도함과 우아미를 나타냄과 동시에 순진하고 귀여운 아가씨라는 성격을 동시에 드러냈다. 모두 세련되고 모던하고 섹시한 60년대 스타일을 전형을 보여준다.

 

파리를 배경으로 한 영화 '하오의 연정'에서는 음악원에서 첼로를 전공하는 순진하고 호기심 많은 처녀 아리안느 역으로 나오는데, 역시 지방시 의상을 입고 나온다. 이 영화에서는 발목이 보이는 경쾌한 사브리나 팬츠와 발찌, 검은 베일이 달린 우아한 모자, 여성스러운 장갑과 구두, 럭셔리한 모피 코트 등 다양한 패션 아이템이 등정해 당시 유행의 중심에 서있는 햅번 스타일을 총출동 한 듯하다.


계절에 맞지 않는 비싼 모피 코트를 마치 다른 남자의 선물인 척 몰래 빌려입는 모습이나 첼로 케이스에 달려 있는 고리를 발찌처럼 걸고 스크린을 누비는 모습이 지금 봐도 깜찍하고 귀엽다.

 


우연한 기회로 유명 패션잡지의 새로운 모델로 기용된 존 스톡튼 역을 맡은 1957년 영화 '화니 페이스'에서도 지방시의 화려한 의상들이 빛을 발한다. 오프닝부터 화려하게 시작하는 화니 페이스는 장면을 핑크로 물들이며 화사하면서도 우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특히 오드리 햅번이 퀄리티 매거진에 실릴 화보를 촬영하는 장면은 압도적이다. 각각의 감정을 표현하는 의상들과 오드리 햅번의 표정연기는 영화 역사상 가장 우아하면서도 아름다운 장면들로 손꼽힌다.


패션쇼 장면에 입고 나온 미니멀한 핑크와 화이트 앙상블, 파리에서 화보를 찍는 풍선이 날리는 장면에서 입은 지방시 모자와 보트 넥의 리틀 블랙 드레스, 그리고 오래된 도서관에서 강렬한 레드 드레스와 스카프를 휘날리며 계단을 걸어 올라오는 장면은 여전히 강렬하다. 마치 영화 장면 하나하나가 마치 패션 화보를 보는 것 같다.

 

두 사람은 한 때 약혼을 할 정도로 사로에게 친밀한 사이였다. 지방시는 오드리 햅번을 위해 '랑테르니'라는 이름의 특별한 향수를 만들었다. 이 향수는 그녀 외에는 아무도 쓸 수 없다는 의미로 프랑스어로 '금지'라는 의미하는 향수 이름을 붙였으며 실제로 오드리 햅번이 죽기 전까지 그 누구도 이 향수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또한 1956년 이후 오드리 햅번은 자신이 출연하는 영화의 의상은 반드시 지방시가 담당해야 한다는 조항을 영화 계약서에 추가시켰고 둘은 시상식에도 언제나 함께 동행을 했다. ‘로마의 휴일로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을 받을 때 입은 레드 카펫 의상 역시 지방시의 작품이었다.

 


두 사람은 단순한 여배우와 디자이너가 아닌 사생활 고민을 털어 놓는 절친이었다. 오드리 햅번은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도 지방시의 의상을 품에 안고 오랫동안 키스를 하며 지방시에 대한 사랑을 드러냈다. 지방시 역시 그녀를 두고 혼자 돌아오는 내내 그녀의 의상들에 얼굴을 묻고 울음을 쏟았다고 한다.


오드리 햅번은 지방시의 모든 작품을 잘 소화했으며 영감의 원천이자 영원한 뮤즈였다. 그녀는 나이가 들면서 더 이상 영화계에서 자신이 활 역할이 없다고 생각하고 다양한 자선 활동에 관심을 돌렸다. 그녀는 내면의 아름다움이 육체의 아름다움과 동등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한 셈이다. 그녀는 전 세계의 학대받고 고통 받는 어린이들을 위해 국제적인 호소를 시작했으며 유니세프의 친선대사로 죽는 날까지 봉사하며 평생 동안 위베르 드 지방시와 가깝게 지내며 남다른 사랑와 우정을 유지했다.

    

 

사브리나(Sabrina, 1954)






 

화니 페이스(Funny Face, 1957)















 

하오의 연정(Love In The Afternoon, 1957)

 








    

 

티파니에서 아침을(Breakfast At Tiffany's, 1961)
















 

 

샤레이드(Charade, 1963)













뜨거운 포옹(Paris When it Sizzles, 1964)

 








백만달러의 사랑(How To Steal A Million, 1966)

 









혈선(Bloodline, 1979)

  





   

  

패션엔 유재부 기자

kjerry38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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