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칼럼 2017-05-02

럭셔리 브랜드 발렌시아가, 이케아 쇼핑백 디자인 카피인가 패러디인가?

지난 해 6월, 2017 봄/여름 발렌시아가 남성복 컬렉션에서 선보인 파랑색 가방 하나가 지금 갑자기 화제다. 패션쇼를 선보인 지 거의 1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카피 논쟁이 일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발렌시아가-이케아 백 논란에 대한 단상.




지난 4월 19일(현지 시각), 미국 NBC방송과 CNN 등이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 발렌시아가가 지난 해 6월 남성복 컬렉션에서 선보인 2,145달러(약 250만원)짜리 가방이 99센트짜리 이케아 장바구니와 ‘똑같다’는 논란을 제기하며 카피 논쟁에 불을 지폈고 이케아가 관련 광고를 선보이면서 SNS상에서 화제다.


지난해 발렌시아가 남성복 컬렉션에서 이 오버사이즈 가방이 처음 선보였을 때는 아무 얘기가 없다가 1년이 지나 지금에 와서야 카피 논쟁을 벌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알렉산더 왕에 이어 발렌시아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된 베트멍의 헤드 디자이너 뎀나 즈바살리아는 자신의 데뷔 무대인 지난해 2월 2016 가을/겨울 발렌시아가 여성복 컬렉션에서 이미 이케아에서 영감받은 오버사이즈 쇼퍼백을 다수 선보여 스트리트 패션에서 유행을 시켰다.


또한 문제의 오버사이즈 백을 처음 선보였을 때도  이미'발렌시아가-이케아 백'이라는 별칭이 붙었으며 뎀나 즈바살리아는 당시 이케아 쇼퍼백으로부터 영감을 얻었다고 공개했다. 이는 경기장 보안요원 복장이나 운송회사 로고 등 익숙한 부분에서 영감을 얻은 해체주의적인 디자인을 선보이는 디자이너의 기발하고 위트있는 요소로 해석되었다.



↑ 사진 발렌시아가 아레나 주름 가죽 홀달(2,145달러)


1년이 지난후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 CNN은 두 제품이 크게 다른 점은 단지 ‘가격’뿐이라고 꼬집었다. 하지만 둘의 차이는 가격이 아니라 디자인과 품격이었다. 발렌시아가 신상은 송아지와 양가죽의 고급스러운 자연 주름 가죽으로 만들었고 상단에 소지품을 보호해주는 지퍼가 달렸다. 비교가 된 이케아 쇼핑백(일명 FRAKTA)은 재생 비닐 소재로 만든 지퍼 없는 1,000원짜리 쇼핑백에 불과하다.


럭셔리 패션 제품의 경우, 첨단 디자인이나 컬러도 중요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고급스러운 가치와 헤리티지다. 이는 가치 소비를 통해 고가품 시장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아무리 좋은 디자인도 소재가 싸구려를 쓰면 금방 티가 나기 때문에 ‘럭셔리 패션=고급 소재’라는 공식은 지금까지 깨진 적이 없었다.


즉 최신 디자인을 보고 구매를 결정하지만, 결국은 소재를 보고 계산을 한다는 얘기다. 따라서 "발렌시아가가 이케아 장바구니를 2,145달러에 팔고 있다"는 일부 미디어의 주장은 ‘근거 없음’이고 "발렌시아가와 이케아 중 누가 승자인가"라는 SNS상의 논란 역시 ‘의미 없음’이다.


↑ 사진 이케아 프락타 쇼핑 백(1달러)


지난해 6월에 선보인 2017 봄/여름 발렌시아가 남성복 컬렉션은 브랜드 역사상 첫 남성복 프레젠테이션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뎀나 즈바살리아의 남성복 데뷔 무대였다. 당시 활기찬 색상의 오버사이즈 백이 런웨이를 가득 메웠지만, 유독 한가지 가방이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갔다.


블루와 옐로 두가지 버전으로 나온 오버사이즈 숄더백은 대중들에게 어디에선가 본 것과 같은 친숙함으로 다가갔으며 이는 일종의 기시감이 작용했던 셈이었다. 이같은 현상은 트렌드를 앞서가는 패션 디자이너들이 런웨이에서 구사하는 테트닉 중 하나다.


코발트 블루의 일명 '아레나 주름 가죽 홀달(Arena Creased-Leather Holdall)'은 현재 매진되어 살 수 없지만, 대중적인 가구 전문점 이케아에서 판매되고 있는 1,000원 짜리 쇼핑백과 닮은 점 때문에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덕분에 리오더에 들어갈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베트멍 디자이너 뎀나 즈바살리아는 스트리트 웨어에서 자주 영감을 얻고 있으며 베트멍의 인기 상품이었던  노란색 DHL 티-츠(330달러)도 스트리트적 요소에서 영감받은 것이다.


디자이너가 이케아 백의 미학에 감탄해 영감을 받았는지 확실치 않지만, 가죽 버전으로 업그레이드시키고 많은 소지품을 안전하게 수납할 수 있도록 지퍼 장치로 실용성을 가미해 완성도 높은 발렌시아가 가방으로 재탄생했다. 따라서 디자인 카피라기보다 디자인에 영감을 주었다는 측면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케아는 발렌시아가 백을 보고 지퍼를 생각했을 것이다. 물론 0.99달러라는 가격 때문에 지퍼를 달 일은 없겠지만 말이다.



↑ 사진 발렌시아가 카피 논란에 대한 이케아의 대응 광고


옷이나 신발에 두 줄이 들어갔다고 아디다스 카피가 될 수 없으며, 데님 패치워크가 이브 생 로랑의 몬드리안 룩 카피가 될 수 없으며, 블랙 미니 드레스도 샤넬의 카피가 될 수는 없다. 만약 최근 논란이 된 발렌시아가의 이케아에서 영감을 받은 디자인이 카피라면, 유명 디자이너들의 컬렉션에서 영감(?)을 얻는 기존 SPA 브랜드 역시 카피 논쟁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패션계에서 유사한 디자인의 대체품(Knock-Off)가 나온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샤넬과 H&M의 사례처럼, 오히려 패션 민주주의를 앞당겼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얻은지 오래되었다.


따라서 이케아 백을 럭셔리 브랜드 가방의 영감의 원천으로 삼은 것은 현재 패션 전문점이 아닌 소매업체에서 저렴한 가격의 대체품이 흘러넘치는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한다. 위트있고 기발한  대체품(Knock-Off) 개념과 젊은 디자이너의 창작품을 그대로 베끼는 부도덕한 복제(Copycat)와는 구별돼야 할 것이다.



↑ 사진 2017 봄/여름 발렌시아가 남성복 컬렉션


발렌시아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뎀나 즈바살리아는 창조적인 해체주의자다. 패러디와 커버 현상은 키치 문화 현상의 일종이며, 이를 스트리트적 유스 컬처와 접목시킨 것이 그가 디자인하는 베트멍 풍의 핵심이다.


따라서 그가 패션쇼에서 선보인 아노락을 입은 독일 관광객, 유럽인 여경찰, 전형적인 경비원, UN 평화군 등 '이미 존재하는 것을 재사용 하는 것'에 포인트를 맞추기 때문에 아케아 쇼핑백과 DHL 티셔츠도 그 연장선상의 위트로 봐야 한다. 그의 패션은 늘 그의 숨겨진 메시지를 통해 베트멍을 혁신적인 레벨로 업그레이드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 사진 2017 봄/여름 발렌시아가 남성복 컬렉션


단지 이미지만 봐도  두 가방의 차이는 확연하다. 만약 브랜드 정보를 주지 않고 소비자에게 두가지 가방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당연히 발렌시아가 가죽백을 선택할 것이다. 이러한 카피 논란 속에서 최대의 수혜자는 바로 이케아가 아닐까 한다.


이미 가방이 모두 매진이 되었고 이케아는 디자인 카피에 대해 고소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이케아 대변인은 카피 논란에 대해 “우쭐한 기분을 들게 한다.”며 “이케아의 초대형 푸른색 장바구니만큼 다양한 기능을 갖춘 가방은 없을 것”이라며 럭셔리 가방과 비교되는 상황이 나쁘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또한 이케아는 값싼 자사 쇼핑백이 화제가 되자 스웨덴 현지 시간으로 4월 27일(현지 시간), 스웨덴 홍보업체 아크네를 통해 고객이 이 둘을 구별할 수 있는 특별 광고를 만들었다.


그 광고 이미지에는 ." 진품 이케아 FRAKTA(original IKEA FRAKTA) 가방을 구별하는 방법 1. 흔들어 본다 –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면 진품이다  2.다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 – 하키 장비나 벽돌, 심지어 물을 운반할 수 있다  3. 흙으로 묻어본다 – 진짜 FRAKTA라면 아무리 더러워도 물로 간단하게 씻어낼 수 있다  4. 가격을 본다 – 겨우 0.99달러다. 이상 끝."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다.


또한 이케아 홈페이지에는 해당 쇼핑백이 분리수거용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는 설명도 첨부해 브랜드 홍보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 사진 2016 가을/겨울 발렌시아가 컬렉션


일부 미국 언론들이 두 가방의 유사성을 소개하는 기사를 내보낸 뒤 네티즌들은 이케아 쇼핑백과 발렌시아가 백의 비교사진을 올리기 시작했고, 일부 네티즌들은 “발렌시아가가 이케아의 값싼 쇼핑백을 2,000달러에 팔고 있다”는 가짜 뉴스를 통해 유럽 럭셔리 브랜드에 대한 '감정 있음' 속내를 드러냈다.


사실대로 말하면 발렌시아가는 이케아 가방을 2,000달러에 판적이 없으며, 이미 제품이 모두 매진되었기 때문에 현재 계속 팔고 있다는 것은 가짜 뉴스인 셈이다. 오히려 매진된 발렌시아가 백 때문에 지금도 판매중인 분리수거용 이케아 백이 더 인기를 얻은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 사진 2016 가을/겨울 발렌시아가 컬렉션


사실 20세기 패션에서 거의 70년대까지 미국 패션계가 유럽의 오뜨 꾸뛰르 패션을 그대로 베껴서 판매한 것은 너무 유명한 일화다. 당시 유럽에서 열린 패션쇼는 옷을 판매했다기 보다는 디자인을 판매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당시 유럽에서 열리는 오뜨 꾸띄르 패션쇼장에는 미국인들의 불법 스케치를 막기 위해 간단히 메모할 수 있는 금색 연필만 나눠주고 나머지 필기구 지참은 불허했다. 미국의 불법 카피를 막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런 미국이 지금에 와서 유럽 럭셔리 브랜드의 카피 논란을 논하다니 참으로 아이러니컬하다.


글로벌 시대에 보호무역주의적인 자국 중심주의를 외치는 도날드 트럼프 바이러스가 미국의 미디어와 대중들에게 전파가 된 듯한 느낌이다. 이쯤되면 반이주민 정책을 펴는 도날트 트럼프 역시 유태인을 학살한 히틀러를 카피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는 점을 알려주고 싶다.



패션은 발명이 아닌 발견이다. 창조적인 요소와 상업적인 요소가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패션 디자인의 미덕은 ‘낯섦’보다 ‘익숙함’이다. 따라서 너무 앞서간 디자인은 미래에는 몰라도, 지금 당장은 소비자들로 부터 외면당할지도 모른다.


결국 팔리는 패션 상품이 되기 위해서는 언젠가, 혹은 어디에선가 본 것 같은 기시감같은 익숙함이 필요하다. 때문에 패션 디자이너들은 대중들이 익숙한 역사와 그림, 사진, 건물, 자연 등으로부터 많은 디자인 영감을 얻는다.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로 디자인의 창조적인 영감을 방해하는 것은 늘 새롭고 낯선 디자인으로 소비자들만 놀라게 할 뿐 매출과는 거리가 멀 것이다. 어쩌면 뎀나 즈바살리아는 많이 팔려야 살 수 있는 패션 산업의 속성을 극단적 대비 요소인 발렌시아가와 이케아를 통해 투영한 것이 아닐까.  어쨌든 당사자인 이케아가 카피에 대해 소송을 할 생각이 없는 이상, 이것을 카피 논란으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생각이다.


패션엔 유재부 기자
kjerry38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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