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칼럼 2015-10-25

[리뷰] 천과 조각이 만난 한국적 모던 詩, 2016 봄/여름 소울팟스튜디오 컬렉션

한국적인 정서를 모던하게 풀어내는 디자이너 김수진의 2016 봄/여름 소울팟스튜디오 컬렉션의 테마는 서울 시리즈의 마지막 편인 ‘들꽃’으로, 저마다 각각 생명력과 차별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아직 완전하게 개화하지 않은 서울의 들꽃들을 위한 위로와 격려의 헌정 컬렉션이었다.




언젠가 우리는 바스라져 버릴지도 모릅니다. 그전까지 아무도 우리의 이름을 부르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러나 우리의 그림자를 두발을 딛고 있는 흙을 기억합니다. 우리는 이 시간 속에 한 일부이고, 조각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부릅니다.” 디자이너 김수진은 컬렉션 노트를 통해 이번 쇼에 대한 자신의 솔직하고 담백한 감정을 드러냈다. 9년차 디자이너의 용기 있는 고백은 스스로의 자기반성이자 미래를 위한 자기다짐이었다 

 

어쩌면 이번 시즌에 보여준 소울팟 스튜디오는 디자이너의 날 것 그대로의 자화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의 희로애락을 채 터득하기도 전에 패션과 사랑에 빠져버린 20대 청춘은 지난 2007년 브랜드 소울팟스튜디오를 론칭했다. 당시 그녀는 22세의 젊으니까 아픈 대학 졸업반이었다. 전공도 패션이 아닌 미디어아트. 하지만 그녀는 패션을 전공하지 않는 대신 모든 과정을 발로 뛰면서 인디 디자이너로 자신만의 정체성을 만들어 갔다. 그리고 24세인 2009, 최연소로 서울패션위크 제너레이션 넥스트 컬렉션에 참가한 이후, 지금까지 7년간 꾸준히 패션쇼를 선보이며 민감한 사회적 이슈를 삶과 정서로 풀어내는 스토리텔링 디자이너라는 다른 디자이너와 차별화되는 자신만의 행보를 걸어왔다.


 

특히 패턴화된 한복 패션과 차별화되는 자신만의 모던 철학으로 한국인의 미의식을 풀어낸 그녀의 패션 철학은 늘 주목의 대상이었다. 여백미와 자연미, 우아미, 정화미라는 4대 키워드는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을 과시하며 독보적인 K패션의 전형을 만들어 나갔다. 특히 2014 가을/겨울 컬렉션의 서울을 긋다라는 테마로 시작해 세 시즌 동안 계속된 서울 시리즈는 한국의 수도 서울의 내면과 외면을 담아내며 아프지만 잊지 말아야 할 우리의 맨 얼굴을 패션으로 풀어냈다. 그리고 이번 시즌 그 마지막 연작를 발표했다. 이번 컬렉션의 테마 들꽃은 서울이라는 도시의 공간, 시대정신, 사람에 이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어쩌면 자본과 권력의 외압에도 꾸준히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하며 자신의 자리를 지킨 자신의 자화상을 닮은 서울을 인디들인 젊은 크리에이터들에게 바치는 헌정 컬렉션이라는 표현이 적당할 듯하다.

 

2016 /여름 서울 패션 위크의 피날레를 장식한 소울팟스튜디오 컬렉션은 피아노 선율과 어우러진 여가수의 목소리가 쇼 시작 전부터 관객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 안았다. 알 듯 모를 듯한 목소리의 가수가 궁금했다. 그 궁금증은 피날레 무대에 라이브로 노래를 부르며 나타난 인디 가수 라엘이 나타나자 이내 풀렸다. 입장 곡 잠을 좀 자고 싶어요’ ‘No’ ‘좋겠다’ ‘나의 위로와 피날레에 라이브로 부른 ‘Brave’에 이르기까지 이번 시즌 서울패션위크에서 최고의 사운드 트랙이 아니었나 싶다.

 

패션쇼는 암전이 된 가운데, 이름 모를 아티스트들의 흑백 셀프인터뷰 동영상으로 시작되었다. 인트로에 나온 아티스트들은 직업만 나올 뿐 얼굴도 이름도 없었다. 그야말로 무명의 삶 속에서 무엇이 되고 싶은들꽃들이었다. 재개발, 세월호, 도시과밀화 등을 통해 이미 조명받고 있는 가치보다 사람들에게 잊혀 지기 쉬운, 그렇지만 잊혀 져서는 안 되는 작은 가치들을 이야기해왔던 디자이너는 독립 아티스트, 크리에이터들의 솔직한 목소리를 담담하게 들려주었다. 타당한 것이 보편적인 세상이 되길 바라는 디자이너의 마음이었을 터. ‘주장보다는 공감, ‘보여주기보다는 참여를 유도하는 그녀의 컬렉션을 늘 정교한 스토리텔링으로 자칫 패션쇼가 간과하기 쉬운 감동이라는 내러티브를 관객들에게 선물한다.

 


이번 시즌 젊은 아티스트에 대해 트리뷰트하는 얼터너티브 컬처를 다루고 싶었습니다. 이들은 각자만의 생명력과 차별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아직 개화하지 않은 들꽃 같았기 때문입니다라는 그녀의 이번 시즌 영감은 패션쇼를 통해 고스란히 드러났다. 블랙 앤 화이트의 착장으로 시작해 채도가 낮은 오렌지 빛깔의 패치워크와 스트랩을 통한 변화를 준 이번 컬렉션은 실제 스트리트 아트 모티프에서 들꽃의 형상까지 표현되었다. 스트리트 아트 모티프는 소울팟스튜디오 식으로 해석해 패치워크나 낙서를 캘리그라피 핸드 브러싱을 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또한 실제 꽃에 개화하는 과정을 그리기 위해 생명력이 없는 듯한 드라이플라워 이미지를 차용, 패브릭 전체에 페이퍼와 같은 질감과 기계 주름을 사용했고 점점 피스 트리밍 디테일이 들어갔다. 순수한 화이트, 본연의 오리지널리티가 묻어나는 누드와 블랙, 젊은 열정의 레드 오렌지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이 않은 선과 조각, 면이 만나 구체적인 형태로 변주되었다. 마치 이름 없는 들꽃들이 이름을 찾아 만개하는 꽃처럼 말이다. 소재 역시 들꽃을 닮은 순수한 린넨, 실크, 종이 같은 패브릭으로 그들의 초심을 내포했다. 특히 평면 패턴의 한국적인 느낌과 입체적인 패턴 블로킹의 어우러진 모던한 느낌은 김수진의 보더리스가 젠더를 뛰어넘어 동서양의 경계를 넘나드는 듯 했다. 그래서 한국적인 듯 서양적이고, 서양적인 듯 한국적인 그만의 정체성이 잘 드러났다. 시적인 힘과 추상적인 미가 겸비된 한국 패션에서 보기 힘든 쇼라는 외국 저널리스트의 칭찬이 과하지는 않은 듯하다.

 


두 명의 여성 모델이 등장해 꽃을 선물하는 쇼의 피날레가 끝나고 아웃트로 영상이 다시 상영되었다. 인트로에서는 이름과 얼굴이 없던 젊은 아티스트들의 얼굴과 이름이 공개됐고, 얼굴이 보이지 않던 가수 라엘 역시 무대에 등장해 라이브로 쇼를 마무리했고 김춘수 시인이 시처럼 꽃을 전달하며 무의미함의 의미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주었다.

 

디자이너 김수진은 무명에서 인디로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가진 디자이너로 성장하는 데 9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어쩌면 해외 프레스와 바이어들로 주목받기 시작한 지금부터가 더 힘들고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20대 청춘의 희로애락을 창작 생활을 통해 스스로 터득한 그녀이기에 창작 노동을 즐기는 낙천성과 들꽃처럼 강인한 한국 여성의 마인드를 겸비했다. 그녀는 컬렉션 노트에서 제 응원이 아주 미약할지 모릅니다. 그리고 제가 여러분의 이름을 부르는 행위가 여러분의 마음을 크게 바꿔 놓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앞으로 우리가 견디어나가야 할 모든 것들에 앞서, 우리들이 공유한 이 장면이 한번 씩 떠오를 때마다, 우리는 우리의 처음을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라며 용기 있는 고백을 했다. 대한민국 패션의 이름 없는 들꽃들인 인디 패션 디자이너와 젊은 아티스트들에게 김수진 디자이너와 함께 괜찮다고 안아주고 싶고, 잘해내고 있다고 격려해 주고 싶다.



































 

글 유재부 패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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