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칼럼 | 2016-06-10 |
[패션의 역사⓵] '패션 민주화'의 동의어 '패스트 패션'의 기원
1800년대부터 현재까지, 세계 패션계에 영향력을 미친 패션 기업과 패션 아이콘, 제품 등에 대한 기원과 진화 과정을 패션사의 관점에서 탐구해 본다. 그 첫 번째 시리즈는 ‘패스트 패션의 기원’에 관한 패션 히스토리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든 혹은 싫어하든, 21세기 들어 ‘패스트 패션’은 소비자들의 구매 패턴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하지만 ‘패스트 패션’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아는 사람은 드물다. 그 기원을 찾아 패션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자. 먼저 ‘패스트 패션’의 컨셉은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저렴한 가격의, 기록적인 속도로 최신 유행을 구매할 수 있는 자라나 H&M과 같은 SPA 브랜드로 부터 유래된, 무척이나 새로운 개념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패스트 패션’은 실제로 1980년대 이후부터 탄력을 받아온 끊임없이 진화하는 생산 시스템을 제공한 패션 용어라고 볼 수 있다. 1800년대 이후부터 현재까지 ‘패스트 패션’의 장단점과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을 살펴보자.
1800년대: 재봉틀 발명과 대량 생산
1800년대 이전에 살았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양모를 얻고, 실을 짜고, 옷을 지어입기 위해 양을 기르는 일에 대부분 의존했다... 아마 상상이 될 것이다. 패션 사이클은 마침내 새로운 섬유 기계, 공장 그리고 기성품 옷, 혹은 주문을 받아 만들기보다는 사이즈 범위 안에서 대량으로 만든 옷을 처음 소개한 산업 혁명 기간 동안 박차를 가했다. 특히 1846년에 처음 전매특허를 획득한 재봉틀은 극단적인 의류 가격의 빠른 하락과 의류 제조 규모를 엄청나게 증가하는 데 일조했다.
신흥 부자인 부르주아를 대상으로 한 꾸띄르 하우스 외에도, 지역에 자리 잡은 양재 사업은 중산층 여성의 옷을 만드는 책임을 맡았다. 반면에 저소득층 여성들은 여전히 스스로 옷을 만들어서 입는 자급자족을 지속했다. 비록 생산의 일부 측면에서 ‘스웨터’를 아웃소싱하거나 매우 낮은 저임금으로 집에서 수공업을 옷을 만드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지역의 양재 기업들은 일반적으로 작업실 직원으로 구성된 팀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유형의 작업은 대부분 지역화되었지만, 1800년대의 ‘스웨터’를 사용하는 방법은 결국 가장 현대적인 의류 생산의 기초가 되는 소규모의 짧은 경험을 제공했다.
1900년대~1950년대: 2차 세계대전과 기능적은 스타일 유행
의류 공장의 숫자와 봉제 혁신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20세기 초반에 걸쳐 의류 생산의 대부분은 여전히 집이나 작은 작업장에서 이루어졌다. 직물의 제한과 2차 세계대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이전보다 훨씬 더 기능적인 스타일들은 모든 의류의 표준화된 생산을 증가시키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러한 표준화에 익숙해진 이후, 중산층 소비자들은 전쟁이 끝나고 나자 대량 생산된 의류 구입에 보다 적극적인 수용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혁신에 관련된 모든 것들이 좋았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 1911년 3월 25일, 146명의 의류 노동자들이 생존권을 주장하는 뉴욕의 트라이앵글 셔츠웨스트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노동자들은 대부분 젊은 여성 이민자들이었다. 또한 이것은 최소한 117명이 사망한 2012년 방글라데시의 타즈린 패션 공장 화제와 같은 최근 사례를 연상시킨다. 패션이 돌고 돌 듯이 아픈 역사를 또한 종종 그 자체로 반복된다.
1960년대~2000년대: ‘패스트 패션’ 용어는 <뉴욕타임즈>가 처음 사용했다
만약 패션 트렌드가 현기증 나는 빠른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한 시기가 언제부터였는지 궁금한 적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1960년대다. 젊은 사람들은 새로운 트렌드에 따라 값싸게 만든 옷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기성세대의 의복 전통을 거부했다. 미니스커트가 대표적이었다. 곧바로 패션 브랜드들은 저렴한 옷에 대한 증가하는 수요를 감당하기 위한 특단의 방법을 찾아야만 했고, 미국과 유럽의 기업들이 아웃소싱한 낮은 임금의 노동력으로 수백만 달러를 절약하기 위해 허용한 개발도상국에 문을 연 대규모 섬유 공장들이 선도했다.
그런데 세계 최초의 진정한 ‘패스트 패션’ 소매업체는 누구일까? 역사적으로 볼 때 확정적으로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자라, H&M, 탑샵, 프라이마크가 포함된, 오늘날 업계의 선두주자로 알고 있는 많은 회사들이 20세기 중반 무렵에 유럽에서 아주 작은 가게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저렴한 유행 상품에 초점을 맞추었고, 결국은 유럽을 중심으로 확산되었다. 미국 시장에는 1990년대 혹은 2000년대 언젠가부터 침투하기 시작했다. 각 브랜드들은 자신들의 겸손한 시작과 화려한 비상을 강조하고 있지만, 누구를 가장 영향력 있는 브랜드로 결정할지 여전히 어렵다. 오늘날 이러한 ‘패스트 패션’ 브랜드의 개념을 정의하는 급속한 성장은 비용 절감 조치와 관련이 있으며, 이는 많은 기업들은 해외 착취 노동으로 가격 경쟁력이라는 자본주의적 이득을 취하고 있지만 논란의 중심에 있는 노동환경과 인권 문제에는 방관자적인 자세를 견지해 비난을 받았다.
기술적으로 볼 때, H&M이 이들 ‘패스트 패션’ 소매업체 중에서는 가장 오랫동안 운영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H&M은 1947년, 스웨덴에서 헤네스(Hennes)로 오픈했으며, 1976년에 런던으로 확장되었고, 마침내 2000년에 미국 시장에 진출했다.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창업자 얼링 페르손(Erling Persson)은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미국에 있는 대형 소매점을 방문했을 때 자신의 매장에 대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자라 창업자 아만시오 오르테가(Amancio Ortega )는 1975년 북부 스페인에서 자신의 첫 매장을 오픈했는데, 아마도 오늘날 따르고 있는 동일한 원리를 사용했다. 즉 속도가 원동력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자라가 1990년 초기에 뉴욕에 왔을 때, <뉴욕타임즈>는 의류가 디자이너의 브레인에서 시작해 매장에서 판매되기 까지 단지 15일 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선언한 자라 매장의 미션을 묘사하기 위해 ‘패스트 패션’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했다고 한다.
세계적인 리테일 자이언트가 뉴욕에 도착하기 전 까지, 유행을 반영한 입을 수 있는 의류 사냥에 나선 미국 소비자들은 쇼핑몰을 기거나 웻실(Wet Seal)과 아메리칸 이글과 같은 트렌드 중심의 10대 매장에서 쇼핑을 했다. 이것을 ‘패스트 패션 제국’을 위한 미국의 선구자들로 볼 수도 있지만, 이 쇼핑몰 매장은 우리가 요즘 기대하는 것만큼 빠르게 새로운 의류 트렌드를 대량으로 찍어낼 수 없었다. 주 범위 내에서 천차만별의 신상품으로 상품 재고를 유지하는 무능력은 그들의 급속한 몰락을 초래했다. 그러나 미국은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패스트 패션’ 소매업체 중 하나인 포에버 21의 홈그라운드이기도 하다. 포에버 21은 1984년 미국으로 이민을 간 젊은 한국인 부부가 로스엔젤리스에서 작은 가게로 오픈했다.
오늘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패스트 패션’의 기원을 파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 새로운 현상이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는 방법을 이해하는 것은 의외로 쉽다.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반에 ‘패스트 패션’은 저가 패션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과시해 대중들로부터 훨씬 더 쉽게 받아들여졌고 호감도 얻었다. 특히 침착함으로 하이-엔드 패션과 저가 패션을 믹스&매치할 수 있는 요령도 알게 되었다. 지난 2000년 4월에 미국에서 첫 H&M 매장이 오픈했을 때, <뉴욕타임즈>는 소비자들이 할인과 백화점을 아웃시키기 위해 최근 의류 사냥을 할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소매업체는 적절한 타임에 도착했다. 지금은 ‘적게 돈을 내는 세련미’의 시작이라는 기사를 썼다.
최근 ‘패스트 패션’ 브랜드들은 케이트 미들턴과 미셸 오바마와 같은 지도급 여성들이 자라와 H&M과 같은 소매업체의 드레스나 팬츠를 입은 모습이 자주 발견됨에 따라, 하이 프로필의 공동 서명도 받았다. 이러한 눈에 띄는 여성들에 의한 ‘일회용 패션’의 수용은 불과 몇 십 년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대량 생산으로 인해 활성화된 ‘패션 민주화’에 대해 대회를 나누면서, 이제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사회적, 경제적 배경과 관계없이 옷을 통해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 패션쇼가 끝나고 현장에서 바로 직구한다
집에서 양을 직접 길러서 실을 직접 짜는 것에서 부터 글로벌 생산에 이르기까지 긴 경로를 고려한다면, 패션 쇼 무대에 처음 선보인 후, 곧바로 그 옷을 핸드폰으로 살 수 있는 ‘현장 직구’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어쩌면 하이-엔드 브랜드에서 요즘 불고 있는 '현장 직구' 바람 역시 '패스트 패션'의 발빠른 트렌드 반영에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즉 '패스트 패션'이 시즌 전에 선보이는 디자이너들의 컬렉션을 베낀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패스트 패션'의 최근 몇년간의 행보를 보면 컬렉션에서 직접 프리 시즌 패션쇼를 선보이기도 하고, 지속 가능 패션을 실천할 뿐 아니라 심지어 오뜨 꾸띄르 컬렉션에도 진출하고 있다. 긴 세월동안 카피를 하면서 나름의 자생력을 키운 것이 아닐까 한다. 어쨌든 거대 자본으로 이용한 '패스트 패션'의 다음 행보가 궁금하다.
아울러 우리는 부당 노동 행위와 산을 이룬 치명적인 폐기물과 같이 우리의 현재 패션 시스템에 중요한 문제가 있다는 사실도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빠르게 이동하는 ‘패스트 패션’에 초점을 맞춘 현 패션 산업에서는 이제 슬로우 패션을 고려할 때다. 적어도 우리가 만든 구매에 대해 좀 더 유념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물론 맨 처음 우리 자신이 옷을 만들었던 시절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않는다. 이제 패스트 패션은 지속가능성과 만나 지속가능 패션으로 진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브랜드가 H&M이다.
패션엔 유재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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