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칼럼 | 2016-05-18 |
[패션 칼럼] 심화되는 럭셔리 패션의 위기론, 그 실체는?
버버리, 프라다, 루이비통과 같은 럭셔리 브랜드들은 금융 위기 시대의 한 가운데 서 있다. 이제 대중들은 한 때 열망했던 럭셔리 브랜드들에 대해 예전만큼 갈증을 느끼지 않고 있다. SPA 브랜드와 함께 패션의 양극화 시대를 주도했던 럭셔리 브랜드들이 최근 IS 테러로 인한 미주와 유럽 관광의 축소, 아시아 시장의 매출 하락, 그리고 글로벌 경제 불황으로 인해 위기에 처했다. 올 들어 심화된 럭셔리 패션의 위기론에 대해 살펴본다.
글로벌 패션 생태계에서 럭셔리 브랜드는 필요충분조건으로, 솔직히 말하면 그들을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보그> 미국판 4월호의 오프닝 페이지를 대충 넘겨보아도 럭셔리 브랜드에 대한 의존도가 얼마나 심각한지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화장품과 주얼리 브랜드를 제외하고 나면, 순서대로 비싼 광고(외국 패션 잡지의 광고단가표에 따르면 광고 가격은 페이지 당 17만5천달러에서 20만달러 사이라고 한다)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때로는 랄프 로렌, 디올, 구찌, 프라다, 샤넬, 보테가 베네타, 생 로랑, 셀린, 돌체&가바나, 펜디, 마크 제이코스, 마이클 코어스, DKNY, 라펠라의 멀티 페이지 광고도 쉽게 볼 수 있다. 그만큼 위기 상황이라는 것을 반증하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들 럭셔리 브랜드가 위기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는 것이 공감이 안가는 부분이 있다. 현재 주식 시장에 상장된 마이클 코어스와 비상장이지만 독립 실행형 브랜드인 샤넬만이 독자적으로 운영되는 유일한 패션기업들이다. 라펠라(La Perla)는 모델 에이전시를 보유하고 있는 룩셈부르크 기반의 개인 투자 회사에 소속되어 있다. 디올, 셀린, 펜디, 마크 제이콥스, DKNY는 상장이 된 루이 비통-모에 헤네시(일명 LVMH) 그룹이 보유하고 있는 럭셔리 브랜드들이며 보테가 베네타, 구찌, 생로랑은 LVMH의 라이벌 기업인 커링 그룹 소속이다.
랄프 로렌과 프라다 역시 주식 시장에 공개된 브랜드로 다른 럭셔리 그룹들과 각축전에서 절대 뒤지지 않는 미국과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럭셔리 브랜드들이다. 폴로 랄프 로렌은 현재 패션 이외의 다른 비즈니스(그 중 하나는 맛있는 햄버거를 제공하고 있다) 뿐 아니라, 클럽 모니코를 포함한 13개의 별도 의류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또한 질 샌더와 헬무트 랭을 매각하기는 했지만 상장된 프라다는 밀라노의 빵 가게 안젤로 마르케시(Angelo Marchesi)의 지분의 80퍼센트를 보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여전히 영국 슈즈 브랜드 처치스(Church’s)와 카슈(Car Shoe)의 주인이다.
럭셔리 브랜드가 쏟아내는 많은 광고들은 ‘명품’이라는 물욕주의 가면을 쓰고 멀어져 가는 소비자들을 지속적으로 유혹하고 있다. 그러나 엄마 젖을 먹는 아이처럼 럭셔리 브랜드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패션잡지와 패션블로그들이 우리에게 미처 알려주지 않는 것들이 있다. 럭셔리 브랜드들이 화려한 겉모습과는 달리 내부적으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는 사실이다. 올해 5월, 버버리는 회사의 매출이 추락하자마자 주가가 폭락했으며, 단기 이익과 수익에 대한 전망도 기껏 잘해야 기복이 심할 것이라며 투자자들에게 조심스러운 전망을 보고했다.
얼마 전, LVMH는 1분기 매출에서 활기가 없는 4퍼센트 성장에 그쳤으며, 패션과 가죽 제품 부문의 밋밋한 매출은 파리에서의 IS 테러 공격이 핸드백 매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주주들에게 보고했다. 지난 2월, 어려움에 처한 프라다에서 처음 발표한 폭풍 경고는 ‘성장이 증발했다’는 무서운 문구와 함께 블룸버그 통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시간이 갈수록 상황은 더욱 더 악화되고 있다. 지난 5월초 프라다는 연간 이익이 26.6% 하락했다고 발표했다. 또한 커링 그룹의 구찌 역시 1분기 매출이 예상과 달리 하락폭이 컸다고 한다. 이에 따라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CEO 듀오의 지휘 아래 모멘텀을 회복하기 위한 플래그십 작업에 들어갔다는 소식이다. 심지어 패션의 질풍노도와는 관련이 없어 보이는 침착한 클래식 메이커 에르메스는 2016년은 럭셔리 산업에 있어 복잡한 해가 될 것이라고 경고를 던졌다.
현재 의연하게 버티고 있는 커링 그룹의 최고 재무 책임자(CFO) 장-마크 뒤플렉스는 최근 컨퍼런스에서 보테가 베네타 브랜드의 1분기 매출이 7.6% 하락한 것은 유럽 여행의 감소, 아시아에서의 매출 부진, 그리고 미국 달러 지폐의 강세 등으로 인한 ‘강한 역풍’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얼마 전 버버리의 최고 재무 책임자(CFO) 역시 자사의 수익 감소 및 주가 침몰에 대해 비슷한 변명을 했다. 부정적인 외부 환경이 럭셔리 제품 플레이어들에게는 극복해야 할 도전적인 요소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 다수의 럭셔리 브랜드들의 새로움에 대한 가치가 현저하게 퇴색되어가고 있다. 루이비통에서 13년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하다가 2013년에 갑자기 브랜드를 떠난 마크 제이콥스는 이미 2008년부터 감성적이지 못한 비즈니스로 실패의 쓴맛을 보았다. 이는 어쩌면 루이비통 퇴출의 전조였는지도 모른다. 페리 엘리스 사후에 곤경에 빠진 브랜드의 여성복을 이끌게 된 마크 제이콥스는 구겨지고 너저분한 느낌의 ‘그런지’ 컬렉션을 선보였고 그 결과 고상한 상류층 고객과 경영진, 언론을 모두 경악하게 만들었다.
당시 <뉴욕타임즈>는 ‘난장판’이라는 혹평을 했고, 결국 경영진은 생산을 취소하고 마크 제이콥스를 바로 해고해 버렸다. 마크 제이콥스가 1997년 루이비통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되었을 때, LVMH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은 재정난에 시달리지 말고 안정적으로 LVMH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그의 브랜드 마크 제이콥스 지분을 인수했고, 현재 80% 지분이 LVMH에 넘어간 상태다. 현재 그의 지분은 10%로 결국 자신의 브랜드조차 지키지 못할 상황이 되었다.
지난 2001년, LVMH 그룹은 약 6억 달러(약 7,068억원) 이상의 자금을 투자해 도나 카란 브랜드의 지분을 인수해 효과적으로 디자이너 도나 카란을 통제했다. 도나 카란이 체면을 잃지 않고 총괄 디자이너로서의 위치는 유지했으나 패션 관계자들은 그녀가 디자인 스튜디오로부터 결국 쫓겨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결국 지난해 공식적인 은퇴를 선언했으며 그녀의 은퇴는 그녀가 구축한 시그너처 라인의 종말을 의미했다. 미국의 빅3 브랜드로 한 때 잘나갔던 패션 제국에서 DKNY 고문이라는 역할로 남아있기 보다는 결별을 선택하고 지분을 모두 정리해 불어난 재산 규모가 유일한 위안거리가 수 있지만 어쨌든 그녀의 시대는 종말을 고했다.
이제 도나 카란은 더 이상 패션 캘린더를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러나 그것은 허수아비 논란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젊은 브랜드들이 새로운 탈출구를 찾는 신호탄이 되었다. 물론 파리를 중심으로 한 유럽의 럭셔리 브랜드들은 반대하고 있지만, 버버리와 톰 포드, 베트멍과 같은 일부 브랜드들은 매장에 옷이 걸리기 몇 개월 전에 바이어와 프레스를 위해 개최하는 패션쇼는 더 이상 쓸모없는 것으로 판단해 현장 직구 컬렉션을 선언하며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현장 직구 컬렉션은 '오늘 쇼를 보여주고 내일 판다(Show today, Sell tomorrow)’는 전략이다. 이들 젊은 브랜드들의 대부분은 공장에서부터 소매까지 직접 컨트롤하고, 직물과 원사를 구하기 위한 긴 리드타임에 대한 필요성을 제거하고, 바이어에게 보여주기 위한 샘플을 제작하는 등 그에 따른 마켓과 제조를 측정하기 위해 수직적으로 회사를 통합하고 있다.
럭셔리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이 ‘번 아웃’을 외치며 떠났던 것처럼 현장직구를 선언한 젊은 디자이너들은 기획과 생산, 리테일 구조의 통합 등 여러 공정과정을 개선하느라 어려움에 봉착해있지만 인-시즌 컬렉션을 선택한 것은 결국 살아남기 위한 선택으로 결국 이 모든 과정을 극복하며 새로운 비즈니즈 모델을 정립해야 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뉴욕의 허드슨 강가에서는 일반 대중들에게 공개한 거대한 지방시 쇼가 열렸다. 파리에서 쇼를 하던 지방시가 뉴욕에서 패션쇼를 연 것은 시장 확장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럼 과연 사람들은 그것을 좋아했을까 아니면 싫어했을까? 이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는 일부 부정적이다. 한 관계자는 "물론 바이어와 프레스 뿐 아니라 일부 대중들에게 공개한 패션쇼는 긍정적이었고 포맷도 장관이었다. 하지만 행사에 1천만 달러의 비용이 투입되었다고 들었다. 만약 그들이 비싼 물건을 살 때마다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렇게 패션쇼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패션쇼를 보는 비용을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인데, 다음 시즌 미국에서 패션쇼를 개최하는 베르사체의 경우 티켓을 판매할 예정이라고 한다. 소비자들의 반응이 주목된다.
오래 전 최초로 럭셔리 패션의 추락을 예측한 책 <디럭스>의 저자 다나 토마스(Dana Thomas) 역시 "사람들은 자신들이 지불하는 돈에 대한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면 결국 물건사는 것을 중단할 것이다"라며 말했다. 다나 토마스는 럭셔리 브랜드의 과도한 확장성에 대해 비난했다. 그는 "소비자들은 각 도시에 거리 모퉁이에 있는 똑같은 매장을 보는것이 싫증나기 시작했다. 이제 패션 시장은 럭셔리가 평범하게 느껴질 정도로 포화 상태가 되었다. 럭셔리 브랜드가 주장하는 차별화는 이제 소비자들에게 통하지 않고 있다. 사람들은 누구도 가지고 있지 않은 럭셔리를 원한다. 루이 비통 가방은 현재 샘소나이트 만큼이나 평범해졌다. 이제 비행기를 탈 때 루이비통 가방을 끌고 간다고 해서 루이비통의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설상가상으로, 일부 오랜 럭셔리 고객들은 제품의 퀄리티는 추락한 반면에 가격은 폭등했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다나 토마스의 주장에 따르면 베이직한 루이 비통 위크앤드 백은 <디럭스>가 발행된 이후 가격이 두 배 이상으로 폭등했다고 한다. 그녀는 “하지만 불행하게도 나의 소득은 두 배로 인상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로스엔젤레스에 위치한 호화로운 빈티지 의류 매장 '데케이드즈(Decades)'의 설립자 카메론 실버(Cameron Silver)는 "럭셔리 브랜드들은 럭셔리 소비자들을 소외시켜왔다."고 말했다. 그는 옷을 빌리거나 혹은 무료로 옷을 얻어 입는 블로거들과 셀러브리티들이 작 돈을 지불해야 하는 소비자들을 대체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카메론 실버는 "런웨이 의상은 잡지들이나 대출을 위해 만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제 럭셔리는 소비자들에게 하찮은 존재가 되었으며, 그들은 반란을 시작하고 있다. 그 반란은 어쩌면 1990년대 중반 레드 카펫과 셀러브리티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과연 누가 시장에 출시하기 6개월 전에 일부 여배우들에게 대여한 꾸띄르 드레스를 25만 달러에 사고 싶을까?"라고 그녀는 덧붙였다.
레드-투-웨어 역시 예외는 아니다. 인터넷 덕분에 레드-투-웨어는 현재 즉시 살 수 있을 정도로 흔한 블록버스터 모바일 커머스 드라마의 주연이 되었다. 카베론 실버는 "레드-투-웨어가 매장에 도착할 때면 이미 소비자들은 지루해지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이미 SPA를 통해 모조품을 수없이 봤고, SNS와 블로그를 통해 너무 익숙하기 때문이다. 이어 그녀는 "대부분의 런웨이 피스들은 결코 생산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마케팅용이다. 헤리티지 브랜드들은 더 이상 패션 비즈니스를 하지 않고 있다. 그들은 가방과 립스틱만을 판다. 장인의 경험이라는 럭셔리의 독특함은 이제 거의 사라지고 허영이라는 물질주의만 남았다."고 주장했다. 18세기에 시작된 산업혁명으로 돈을 번 유럽의 부르주아들이 왕족과 귀족의 옷을 만들어 주던 꾸띄리에라고 불리는 장인들에게 돈을 주고 옷을 맞춰 입으면서 서구식 패션 역사가 시작되었지만, 그로부터 두 세기가 지난 21세기에는 패션 양극화와 소비 민주주의로 인해 이제 패션은 ‘특권이나 독점’이 아닌 ‘선택과 공유’의 문제로 바뀌었다.
패션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패션을 죽이는 것이며 디지털 문화가 가능하게 만들었다. 인스타그램에서 3천 달러짜리 제품들을 팔고 있는 유명 블로거와 자유분방한 젊은 셀러브리티들은 창의성을 반영한 옷을 입은 자신의 셀피를 찍어 SNS에 올리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지갑이나 향수병으로부터 분기별 이익을 빨아들이는 뱀파이어 기업에 대한 로망도 없을 뿐 아니라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 이제 럭셔리 패션은 한마디로 ‘산송장’이라는 표현이 적당할 듯하다. 그러나 드레스를 통한 대중들의 자기표현은 럭셔리와 함께 죽지는 않을 것이다. ‘옷을 입는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패션의 본질이 그대로 남아있는 컨템포러리 패션은 소셜 미디어의 영향으로 ‘입는 행위’가 아닌 ‘소통하는 도구’로 바뀌었다.
이제 18세기 부르주아들이 추구했던 과시용 패션이나 허영 가득한 물욕주의는 서서히 그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코르셋으로부터 해방이 여성에게 자유를 선물한 것처럼 럭셔리로 부터의 해방은 시대정신에 따른 정상적인 과정이 아닐까 한다. 드레스나 스커트 대신 팬츠를 입은 캐서린 햅번이 남자들이 점거한 프랑스 레스토랑에 입장하지 못하고 야외에서 커피를 마신 것이 20세기 초반의 일어난 일이었다.
물론 럭셔리 브랜드의 종말이 패션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제 패션은 사치와 허용의 분식패션이 아닌 인류를 위한 보편적 소통 문화로 바뀌어야 한다는 의미다. 즉 남과여, 서양과 동양, 미와 추함, 백인과 흑인, 보수와 진보 등 이분법적인 사고가 아닌 진정한 의미의 해체주의적 포스트모더니즘이 필요하다. 즉 21세기 패션에서는 ‘틀리다’라는 대결적이고 차별적 시각보다는 ‘다르다’라는 포용적이고 다양한 시각이 그 핵심이다.
최근 들어, 지구 환경 지키기와 윤리적 패션을 추구하는 지속가능 패션이 구호나 선언적인 의미를 뛰어넘어 실천을 의미하는 ‘책임 있는 패션’이라는 화두로 새롭게 급부상하고 있다. 고무적인 사실은 그 선두에 패션을 전공하는 젊은 대학생과 H&M과 같은 패스트 패션이 앞장서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 부르주아들의 왕족과 귀족들에 대한 자격지심으로 시작된 럭셔리 패션의 구시대적 관행은 집단 지성이 공동으로 추구하는 ‘함께하는 가치와 행복’이라는 공익적 패션으로 바뀌어야 한다. 어쩌면 럭셔리가 추구했던 허영과 사치는 타임머신 캡슐에 담아 북극에 묻어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글 유재부 패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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